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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성미술 감독, 굶어 죽더라도 고국가자 결심한 이유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06
[29th BIFF] 부산영화제 까멜리아상 첫 수상자 류성희 미술감독 5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류성희 미술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포트폴리오를 들고 수없이 많은 제작사를 찾아다녔는데 멜로영화를 하라며 거절당했다. 그때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그 인식과 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만든 장르 영화도 독창적이고 강렬할 수 있다. 인간사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다."

지난 2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후원사 샤넬이 공동 제정한 까멜리아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류성희 감독은 차분한 어조로 소감을 전했다. 류승완,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감독 등 한국영화 황금기를 끌어온 감독 곁엔 대부분 류성희 미술 감독의 손길이 있었다. 2016년엔 <아가씨>로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인 최초로 벌칸상(기술 부문 영화인에게 수여)을 받기도 한 류성희 감독은 명실공히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인이다. 5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류 감독이 국내외 취재진을 만나 자신의 철학과 꿈을 밝혔다.

판타지와 현실 추구 사이

미국영화연구소(AFI) 출신이기도 한 류성희 감독은 짧게나마 독립영화 작업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한국에서 도예를 전공한 후 영화 미술을 공부하게 된 류 감독은 미국에서의 앞날 대신 돌연 귀국을 택했다. 여성 영화인, 여성 핵심 스태프의 불모지와 같았던 당시 한국을 택한 것에 그는 "영화적 판타지를 꿈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은 서부 영화를 맡게 됐는데 사막에서 서로 총을 거칠게 쏘다가 다 죽는 이야기였다. 정말 힘들게 일했는데 그때 문득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작게나마 재능이 있다면 서양인의 작업을 답습하고 비슷하게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실패를 해도 내 작업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날밤 <동사서독> <동방불패> <백발마녀전> 등 홍콩 영화를 몰아봤다. 남성성도 여성성도 아닌 중성 느낌의 영웅이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이슬 맞고, 굶어 죽더라도 한국에 가자 결심했다."

그렇게 돌아왔던 한국, 당시 영화계는 여성 미술 감독이라고는 단 한 명 뿐이었다고 한다. 여러 제작사에 장르 영화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전했다가 거절당하기 일쑤였던 차에 류승완 감독이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여성이 전면에 나서 액션을 벌이는 당시에도 획기적이었던 <피도 눈물도 없이>(2002)를 시작으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최동훈 감독 <암살> 등 내로라하는 감독과 작업을 이어가게 됐다.

"기성 제작자들이 절 거절하는 대신 새로운 감독들이 절 택했던 것 같다. 종종 이 산업에서 여성의 성공은 우연이라고 여겨지곤 했는데 그걸 막기 위해 전 10년간은 장르영화만 하겠다고 결심했다. 정말로 여러 장르 영화를 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서 여성 인력이 많아졌고, 성별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영화산업에서 말이다. 단계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제가 특별한 천재도 아니고 남녀를 떠나서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 만큼 조급해하지 않고 하다보면 장인이 돼 있지 않을까 싶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 머리 하얀 분들이 미술상을 받곤 하잖나. 제 목표는 탁월함이다. 한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기지고 있다. 본인이 목표하고 꿈꾸는 바를 분명하게 잡고 박차를 가하면 어느새 사회적 편견은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 편견 자체에 맞서면 나가떨어질 수 있으니 일종의 돌파해야 하는 관문으로 생각하며 일했던 것 같다."

평소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본을 꼼꼼하게 읽는 것으로 잘 알려진 류 감독은 첫 관객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언급했다. 대본을 처음 받아 두 번째 읽기까지 드는 감정을 잘 메모하고 간직한 채 본격적으로 자료조사에 들어가는 식으로 작업해왔다고 한다.

"제 일을 전 고고학적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양의 자료를 조사한다. 하지만 동시에 판타지잖나. 역사학자가 아닌 판타지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그 과정을 거치고 기쁜 마음으로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맞이한다.

사실 지난 10년간 제 세계를 직접 연출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간 감독님들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지원자 역할이었으니 내가 그리는 세계가 궁금했었다. 근데 지금은 그 마음을 옆으로 두고 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있으니, 제 역할을 잘해서 한국영화에서도 멋있다 할 수 있을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여성' 미술 감독 아닌 미술감독 류성희

 5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류성희 미술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데이빗 린치 감독의 <엘리펀트 맨>,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모든 작품들은 류성희 감독의 교과서였다.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 질문을 영화적으로 풀어보고 싶은 욕구로 이 일에 매진해왔다고 한다. 특히 박찬욱 감독과 여러 작품을 하면서 어떤 정답을 찾는 게 아닌 옳은 질문을 하게끔 하는 게 화두였다.

"제가 운이 좋아서 여러 감독님들이 아니었다면 빠르게 이 영화산업에서 튕겨 나갔을 수도 있다. 제가 경험한 감독님들은 모두 카메라 앵글 안에서 빛나는 질문을 던지고 계셨다. 열정과 에너지를 잃지 않고 영화적 리듬을 어떻게 이어가는지, 그리고 한국 지역 사회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지 등을 감독님들께 배웠다."

한국영화 황금기를 거쳐 잠시 침체한 요즘이다. 류성희 감독 또한 꾸준히 작품을 쌓아오며 또다른 혹은 새로운 동기부여나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대형 상업 영화 뿐 아니라 그의 판타지성이 독립영화에도 폭넓게 장착됐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판타지, SF를 잘 만들어내는 나라가 몇 안 되잖나. 결국 우리도 관객들이 수긍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고 인정받아야 한다. 문학과, 문화가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선 기술이 필요하다. 후배들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게 저도 노력할 것이다. 적어도 과거 유산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과정에서 은퇴해야지. 그 자산을 통해 후배들이 딛고 설 수 있길 바란다.

SF 판타지에서도 한국영화가 멋있다는 말이 나오게끔 일하고 돕고 싶다. 다만, 규모가 있는 SF가 아닌 SF적 상상력을 말한다. 독립영화에서 생각과 발상이 SF적이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SF라고 하면 서구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아직 정답을 모르겠지만, 한국 SF를 구현하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

제가 상 받을 때마다 쑥스러움을 금치 못한다. 영화는 저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제가 잘한 거 하나를 얘기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사람들이 여성 미술 감독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술 감독 류성희라고 한다. 그게 도움이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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