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아파트’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
“작가? 감독? 난 연기하는 사람”
배우 손수현(36)이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 ‘럭키, 아파트’로 스크린을 찾았다.
영화 ‘럭키, 아파트’는 영끌로 마련한 아파트에 진동하는 악취 때문에 붕괴 직전에 내몰린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를 통해 보이지 않지만 깊숙이 스며 있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사려 깊게 파고든 작품이다.
‘이태원’ ‘우리는 매일매일’ 등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강유가람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로, 손수현은 ‘럭키, 아파트’에서 아랫집 악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고민하는 선우를 연기했다.
손수현은 강유가람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이번 작품을 함께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매일매일’이라는 감독님의 작품이 좋아 3~4번 보게 됐고, 감독님의 다른 작품도 모두 챙겨봤다. 예전에 제가 ‘우리는 매일매일’의 모더레이터를 하며 인사를 나눴고 함께 풋살하면서 가까워졌다. 감독님에게 같이 해보겠냐고 전화가 오자마자 시나리오도 안 보고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시나리오를 보고 말해달라고 하길래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냄새라는 매개와 아파트란 공간에서 두 커플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세상을 정면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용감하고 현명한 감독님의 이야기가 좋았다. 제가 믿고 의지하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싶었고, 감독님이 되게 진중한 스타일이다. 감독님의 머릿속 그림이 확실한데, 그 그림을 제가 잘 구현해보고 싶었다. 감독님의 첫 장편 극영화를 함께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며 강유가람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손수현이 ‘럭키, 아파트’의 선우와 가까워진 순간을 언급했다. 사진|인디스토리손수현은 선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긴머리를 기꺼이 잘랐다.
그는 “시나리오에 짧은 머리의 잘생긴 선우라고 적혀 있어 부담스러웠다. 잘생긴 선우에서 멈칫했는데, 머리를 짧게 자르는 건 아깝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발을 사서 해봤는데 너무 티가 나서 촬영 두 달전에 잘랐다. 너무 짧은 머리는 처음이라 낯설긴 하더라. 다리에 깁스를 하고 연기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나중에 깁스를 풀고 나도 모르게 다리를 절뚝이는 연기를 한 적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선우의 마음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 힘들었단다.
그는 “선우는 굉장히 불안해 보인다. 다리를 다치면서 직장에도 못 다니고 있는 불안함, 연인에게 내가 빚지고 있고 신세 지고 있다는 자책, 엄마와 관계에서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친구다. 레즈비언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부당함도 있고, 그런 것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혼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냄새의 원인과 함께 진상을 규명하려고 애쓴다. 저 역시 처음에는 선우의 상황이 이해는 되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나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러다가 선우란 인물의 외로움이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꼭 인정받을 필요는 없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상황이라 선우는 인정받고 싶어 한다. 우리도 자존감이 굳게 서 있는게 아니라 무너질 때가 있지 않나. 저 역시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여러 가지로 편하게 세상을 즐기면서 살 수 없고 선우와는 조금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뭔가를 계속 증명하고 말해줘야 한다는 것에서 비슷한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선우의 외로움이 이해되고 어느 순간 선우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극 중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박가영에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손수현은 “저희가 9년 차 연인이라 촬영 전에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는데, 현장에서는 거의 만난 적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 뒤 “희서랑 싸우는 장면이 많아서 힘들었다. 행복한 장면은 찰나라 너무 꿈 같고 전생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함께 호흡을 맞추며 박가영이 되게 힘 있는 배우라는 걸 느꼈다. 박가영이 주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그걸 잘 받아서 전달하고 싶었고 서로 시너지가 너무 좋았다”고 덧붙였다.
손수현은 지난 2013년 데뷔해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6’ ‘실종느와르 M’ ‘블러드’ 등에 출연했다. 뿐만 아니라 단편 영화 ‘프리랜서’ ‘선풍기를 고치는 방법’를 연출한 감독이며, 에세이 ‘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나요’ 등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연기를 하지 않을 때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더라.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싶었고,저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사람이더라. 책도 친구와 같이 쓰게 됐고, 단편 연출도 해보게 됐는데 연기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더라.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연출도 계속해 나가고 싶다. 어떤 타이틀을 위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배우로 활동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그는 “연기를 막 시작했을 때는 붕붕 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잘 해온 것 같으면서도 지금 돌아보면 최선의 선택이 아닌 순간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다”며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이어 “연기의 재미를 느낀 건 단편 ‘마더 인로’를 찍으면서였다. 제가 모르던 인물을 알아가고 만나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더라. 여전히 내가 잘 해나가고 있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지금은 내가 딛고 있는 발이 어디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어떤 이야기에 참여하고 만들고 싶은지 그 기준이 명확해진 것 같다”고 고백했다.
평생 연기하고 싶다는 손수현은 “누군가에게 제가 맡은 캐릭터가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캐릭터는 픽션이지만, 이 픽션이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걸 옮겨놓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을 투영하지 못하더라도 단 한 명에게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 우리가 만드는 인물과 이야기가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지, 누군가를 밟고 지나가는 건 아닌지 그런 고민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럭키, 아파트’는 작년 여름 모두가 진심을 담아 열심히 촬영했다. 개봉을 기다리는 것도 지치는 일인데 빠르게 관객과 만날 수 있어 정말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혐오가 많은 세상이고 혐오를 받는 대상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져야 하는데 앞으로 뒤로 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같다. 모두가 평등하게 제도를 누려야 하는데 누군가에게 그게 어렵다는 현실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영화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희 영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영화로 끝나지 않길, 선우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