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한국영화 기대주 ④ ‘뭐 그런 거지’ 이하람 감독- 부산 출신으로 퇴직금 털어 입문
- 세 번째 장편인 ‘뭐 그런 거지’
- 폭력과 부조리한 청춘의 자화상
- BIFF 초청돼 파격적 형식 화제
- “차기작은 판타지 요소로 새 실험”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단편 소설 ‘빵가게를 습격하다’에는 단지 배가 고프다고 빵가게를 털고 사람을 죽이려는 청춘이 등장한다. 미국 작가 커트 보니컷의 소설 ‘제5도살장’ 주인공은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며 “뭐 그런 거지”라고 내뱉는다. 이들 작품에선 잔혹한 폭력이 일어나지만 이유도 인과관계도 없다. “왜?”라는 질문조차 통하지 않는 불가사의하고 폭력적인 청춘의 기행(奇行). 이하람 감독은 영화 ‘뭐 그런 거지’를 통해 이러한 기묘한 기행(紀行)을 카메라에 담았다.
세 번째 장편 영화 ‘뭐 그런 거지’로 다시 한번 개성을 선명히 각인한 이하람 감독.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지석’ 부문에 초청된 이하람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뭐 그런 거지’는 차를 타고 다니며 사람을 죽이는 젊은 부부가 주인공이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무의식대로 움직이고,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스크린은 멸망을 앞둔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정지혜 영화평론가는 ‘무엇과 비교되지 않고 어디로도 수렴되지 않는 기이한 혼종 세계에서 서부극 공포 고어 SF 로드무비 로맨스의 흔적마저 감지된다. 기꺼이 헤매고 싶은 도발적인 기행’이라고 표현했다.
부산 출신이며 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이하람 감독은 20여 년간 요리사로 일하다가 영화감독이 됐다. 독특한 이력이다. “영화 보는 걸 좋아했고, 그림도 그려 주변에 선물도 했어요. 음악도 좋아해 작곡한 비트를 래퍼 등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계속 내면의 뭔가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생각을 시각화하는 영화가 좋다는 걸 깨달았죠.” 퇴직금을 밑천 삼아 영화에 뛰어들었다.
장편 데뷔작 ‘기행’(2022)은 제27회 BIFF 비전 부문에 초청됐고, 부산독립영화제 부산영화평론가상과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 등을 받으며 그는 주목받았다. 두 번째 장편 ‘흙으로 돌아가리라’(2023) 역시 부산독립영화제에 초청됐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두 작품은 ‘독창성이 빛을 발하는 매력적 난장’이란 평을 받았다.
정형화되지 않은 촬영 기법, 독특한 색감, 기승전결을 파괴한 형식은 이 감독 작품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난장’이 거칠게 표현되며 더욱 두드러진다. 감독은 “그런 점 때문에 관객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고, 때로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며 “촬영 전에 배우들에게 항상 이런 점을 강조한다”고 웃으며 전했다.
‘뭐 그런 거지’의 한 장면.‘뭐 그런 거지’는 폭력적이면서도 불완전한 청춘을 부각한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처럼 인간 본성과 사회 규범 사이 갈등이 제약 없이 표출되며, 사람을 죽이는 데 특별한 이유도 없다. 영화는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관객은 이유 없는 범법 행위에 부조리와 의문을 느낄 수 있지만, 감독은 바로 그때가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본다. 그는 “영화는 모두의 것이다. 감독은 질문을 던질 뿐, 정답은 없다. 관객 각자 느낀 감정으로 영화는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는 또한 ‘말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인다’는 점도 보여준다.
차기작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영화가 될 예정이다. 그는 “낭만과 판타지 프로젝트 중 첫 시리즈로 논의 중”이라고 귀띔했다. 한 소녀가 할머니가 남긴 열쇠를 통해 햇빛(낭만)이 사라져가는 어둠 세계에 들어가는 이야기이다. 그는 “영화마다 연출법과 형식을 다르게 시도하려 한다. 구상해 둔 이야기가 서른 개 넘지만, 돈과 시간 문제가 있으니 실현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며 “부산에서 활동하다 보니 캐스팅·배급에 한계는 있다. 궁극적으로는 독립적인 스튜디오를 만들어 배급·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