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의 마음극장 ‘만추(Briefate Autumn)’영화 ‘만추’의 한 장면. 빅뱅컨텐츠 제공“우리 5학년 2반은 20년 뒤 이 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나는 거예요!” 학교 운동장 가에 서 있던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펑펑 떨구던 날에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85년 11월의 어느 금요일이었으니까 2005년에 그 약속이 지켜졌어야 하는데, 분명한 건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설령 기억이 났더라도 갈 사정이 못 되었어요.
왜 지금에야 그 약속이 새삼스레 돌아오는지 알 수 없지만 노란 은행잎이 소복이 쌓인 그 나무 아래가 선명하게 떠올라요. 우리가 거기서 손수건 돌리기를 했는지 강강술래를 했는지 우리 집에 왜 왔니를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쩌면 그 모든 걸 다 했을 거예요. 2005년 11월의 어느 날에 그 나무 아래 나타났어야 했던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습니다.(나영아 인석아 병화야 병연아 은정아…. 그리고 김현수 선생님) 그러다 영화 ‘만추’(김태용 감독, 2010년)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고 다시 본 후에 이 글을 시작합니다.
영화 ‘만추’의 한 장면. 빅뱅컨텐츠 제공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시작되는데 애나(탕웨이)가 카페로 들어와 앉아서 훈(현빈)이 오기를 기다리더군요. 분명 끝날 시간인데 이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듯이요. 애나가 드디어 10년에 가까운 긴 감옥생활을 끝내고 출소하던 날이었죠. 2년 전에 훈이 했던 약속대로 키스톤 카페에 들렀어요. 그날 훈이 안갯속에서 말했죠. “우리 여기서 다시 만날까요? 당신 나오는 날에.” 아, 그러고 보니 이건 약속이 아니라 제안이었군요. 그런데 꼭 그 말 때문이었을까 싶어요. 훈이 그 약속을 지키러 나와줄 거라 믿는 것 같지도 않거든요. 사실 그런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분명하지 않아요.
2년 전 72시간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교도소로 돌아가던 그 날은 안개가 모든 걸 집어삼킬 듯이 짙었어요. 애나의 기억에 남겨진 훈과의 마지막 포옹도, 간절한 약속도 모두 꿈속의 일인 것만 같았죠. 그래도 그녀는 카페에 앉아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꼭 훈을 기다린다기보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죠. “안녕, 오랜만이에요.” 차분히 인사를 연습해보기도 하면서요. 10년이면, 참으로 오랜만이라 할 만하지요.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세월에 대한 회한이나 원망이 깃들지도 않은, 덤덤한 목소리로 오랜만이라고,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아침에 자기 자신에게 하듯이 그렇게 인사했어요.
영화 ‘만추’의 한 장면. 빅뱅컨텐츠 제공이 영화가 아주 끔찍한 죽음의 장면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늦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멋진 분위기였어요. 지금까지가 아주 긴 악몽이었다면, 이제 새날이 시작되었으니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지금부터 펼쳐질 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할 때라고 다짐하는 것처럼요.
잠시 나도 애나가 되어서 나 자신에게 속삭여 보았어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좀비처럼 서성이던 시간들은 이제 안녕, 나는 지금 막 깨어난 거야. 오전에 잠들었다가 해질녘에나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날도 있는 거지.’ 그랬더니 나도 모르게 주룩, 눈물이 나는 거 있죠. 사실 나는 출소하려면 최소 10년은 더 남은 재소자 같은 기분이 떨쳐지지를 않거든요.
자유를 허락받은 시간이 72시간밖에 없던 애나. 비싼 시계를 차고 있지만 현금이 없고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불안한 훈. 이 위태롭고 가난한 이들이 낯선 땅에서 우연히 만나 모국어가 다른 상대에게 각자의 말을 해도 충분히 대화가 되었던 것은, 타인을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해 말하고 들었기 때문일 거예요.
영화 ‘만추’의 한 장면. 빅뱅컨텐츠 제공두 사람이 만난 건 애나가 젊은 날의 실수를 감옥에서의 시간으로 감당하고 있던 때였지요. 그녀는 이제 안개 가득한 터널의 마지막 구간에 진입한 시기였어요.(당사자에게는 그런 감각이 없겠지만) 훈은 그 입구쯤에서 쫓기고 있었고요.(그 역시 자기 인생의 어느 구간에 있는지 모르긴 마찬가지) 이 가여운 청춘들이 잠시 잠깐 서로를 운명처럼 스쳐 지나가는 우연한 겹침의 시공간에 ‘만추’라는 이름을 붙인 건, 나로서는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어린 시절 은행나무 아래에서 만나자는 선생님의 약속을 사십여 년 만에 기억해낸 처지이다 보니까요. 훈이 애나처럼 운 나쁘게 감옥살이를 하더라도 그 시간을 감당하고 나와서 애나를 찾아간다 해도 별로 늦은 건 아니라는 계산이 다 선다니까요.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도 이 아름다운 주인공 남녀는 잘해야 삼십대 초반. 영화 제목도 ‘만추’보다는 ‘춘분’ 정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고.)
젊은 날에는 마음 붙일 곳 발붙일 곳이 없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듯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그 실수가 터무니없는 청구서를 내밀며 발목을 잡고 지옥 바닥까지 끌어내리기도 하지요. 되돌릴 수 있다면, 하고 부질없는 가정을 하며 내 인생의 시나리오를 아무리 다시 써본다 한들 부질없지요. 그때의 나는 예정된 추락의 경로를 벗어날 길을 찾을 만한 깜냥이 못 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애나가 시애틀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에 훈은 어리석고 위험한 만남을 위해 애나를 잠시 떠나면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지요. “잠깐만, 30분이면 돼요. 여기서 기다려요.” 애나는 불안한 눈으로 훈을 쳐다봐요. “그때 나는 여기 없을 거예요.” 그때 훈이 웃으면서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해요. “알아요, 그렇지만 난 돌아올 거예요.”
영화 ‘만추’의 한 장면. 빅뱅컨텐츠 제공이 장면, 이 대화가 좀처럼 이해가 안 되더니 이제야 알겠네요. 애나가 교도소로 돌아가던 날, 안개 자욱하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꿈결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들었던 훈의 말은 결국 애나 자신의 목소리였던 거예요. “우리 여기서 다시 만날까요? 당신 나오는 날에.”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카페에서 애나가 기다리던 장면은 훈이 했던 약속을 애나가 지켜주는 엔딩인 거죠. 그녀가 없을 걸 알지만 돌아오겠다는 그 약속처럼, 그가 없는 자리로, 그녀가 돌아온 거예요.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그녀가 없는 자리로 그가 돌아와 있겠지요. 그대가 없을 줄 알지만 잊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억하고 돌아올 거라는 약속은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죠. 약속이란 기억할 때 지켜지고, 지켜질 때 태어나는 것. 잊었던 무언가를 새롭게 기억해서 다시 태어나기 좋은 만추의 계절입니다.
영화 칼럼니스트 이하영 ha02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