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딸에 대하여> 이미랑 감독▲ 참여연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미랑 감독ⓒ 참여연대 박상환
"소설을 쓰는 동안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해라는 말속엔 늘 실패로 끝나는 시도만 있다고 생각한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그런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소설 <딸에 대하여>를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받은 이미랑 감독은 원작 소설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영화를 연출하고 싶게 됐다고 한다. 올해 9월 4일 개봉한 <딸에 대하여>는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2만 명 넘는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렀다. 이미랑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상과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관객상, 올해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 등을 받았다.
영화는 사회의 냉대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소수자들의 이야기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오민애 배우)는 사회적 명성을 잃어가는 무연고자 제희(허진) 생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어느 날 비정규직 강사인 딸 그린(임세미)이 엄마에게 맡겨놓은 듯 목돈을 요구했지만 여의치 않자 같이 살게 된다. 그런데 딸 그린이 동성 연인 레인(하윤경)을 집에 데려오면서 돌봄노동만으로도 힘들었던 엄마 삶에 근심이 더해진다.
영화의 스페셜 포스터에는 "사랑하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고, 그럼에도 차마 포기할 수 없는 마음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영화를 연출한 이미랑 감독을 만나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들어봤다.
"메시지 언어로 전달하지 않으려 노력"- 장편 데뷔를 축하드린다.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을 선택한 계기가 무엇인가?
"실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딸에 대하여>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 등을 만든 제작사 '아토'에서 만들었다. 아토의 제정주 프로듀서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제작실장을 했고 난 영화 <시> 스크립터를 했다. 내 이전 작품이나 성향을 알고 있던 그가 이 작품을 제안해줬다."
- 처음 소설 <딸에 대하여>를 읽었을 때 감상이 궁금하다.
"김혜진 작가는 워낙 유명했고, 좋아하던 작가였다. 학교를 같이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를 연출하기로 하기 전 이미 원작을 읽었다. 김 작가가 나랑 나이가 같은데 60대 여성 화자 시점으로 소설을 쓰는 것도 놀라웠다. 여성 혼자 일하며 늙어가는 것과 돌봄노동, 딸 그린의 입장 등 여러 측면에서 이게 내 일이 될 수 있고 많은 여성이 모두의 일이라고 느끼도록 하는 게 흥미로웠다."
- 퀴어, 젊음과 노화, 돌봄과 노동, 가족 공동체, 타인을 향한 이해 등 영화가 품은 주제가 다양한데 이것들이 따로 놀지 않고 자연스럽게 포개져서 좋았다.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은?
"원작 소설은 오히려 이를 더 풍부하고 깊게 파고드는 문장이 있지만 영화에선 다 표현하기 버거웠다. 원작 소설은 주인공 화자(엄마) 시점이지만 영화는 화자가 없는 매체로 감독이라는 관찰자 시점이 생겨난다. 다양한 주제들이 다 간단치 않은 것들이고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엄마를 중심에 두고 무연고자 재희,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성소수자인 딸, 딸의 연인과 그 주변으로 확장하면서도 엄마의 정서를 잘 따라가 보자고 생각했다.
작품에는 아무래도 창작자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무연고자, 성소수자 등은 당사자성이 없어서 그것보다는 혼자 노동하며 늙어가는 부분이 많이 와 닿았다. 쉽지 않은 주제와 소재들에 장벽 없이 다가가려 오래 편집했다. 미시사에서 거시사로 가면서 관객을 가르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내 영화가 까딱하면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다른 독립·예술영화와 다르게 속도감 있게 만들고자 했다."
- 영화가 계몽적이지 않으려면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하나?
"내가 찾은 방법은 언어로 전달하지 않고 정서로 전달하는 것이다. '어떻게 남의 일이야'라는 말에는 '이 일은 다 우리 일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숨어있는데 이런 내용을 언어로 전달하지 않으려고 했다. 말로 전하는 대신 엄마의 일로 만들어서 엄마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면 관객들은 엄마의 정서를 따라가다 나중에서야 느끼게 된다. 다만 영화 뒷부분이 헐겁다는 생각도 든다."
- 왜 뒷부분이 헐겁다고 생각했나?
"모든 이야기의 면면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끝냈다. 중요한 이슈들을 날카롭게 다뤄도 될까 말까 하는 시대에 둥글게 전달하며 급하게 마무리한 건 아닌가 싶다."
- 원작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 소설 전체를 필사했다고 들었다.
"원작이 장편소설이긴 한데 길지 않았다. 실무적으로 구성하고 조합하려면 문서화가 돼 있어야 각색할 수 있으니, 프로세스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눈으로만 읽다가 손으로 쓰고 입으로 뱉어보면서 '작가의 마음이 이랬을까' 생각하며 그 마음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도 물론 있다. 하지만 사실 누구나 하는 작업일 거다."
-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기회가 되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훨씬 재밌다. 화자인 엄마 시점으로 몰입감이 있고, '쟤네들은 왜 저럴까' 등 내면의 독백이 계속된다. 늙어가는 것에 대해 느끼는 엄마의 공포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가족 없이 늙어가다 요양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는 재희가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딸이 가족을 가질 수 없으니 공포를 딸에게 대입해 가면서 자신의 먼 미래로서 딸을 보는 엄마 마음의 지도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원작소설 작가의 말 보고 이 영화가 하고 싶었다" ▲ 영화 촬영 현장의 이미랑 감독과 임세미 배우ⓒ 네이버영화
- 영화를 보면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소설 맨 뒤 작가의 말을 보고 이 영화가 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늘 실패로 끝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는 마음. 다들 먹고살기 바빠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지 않나.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 레인이 찾아와 연인인 딸을 '그린'이라고 하자 엄마는 '우리 딸은 그린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자신들이 따로 지은 이름을 쓰면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비유로 이해했다. 엄마도 엄마라고만 불리고 이름은 안 나온 것 같다.
"맞다. 소설에 있던 아이디어다. 엄마도 엄마라고만 불리는데 그 의도가 맘에 들어 영화에서도 그렇게 했다. 세상의 많은 엄마가 본인의 이름을 잃고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산다. 다만 영화에서 엄마가 직장을 구하러 갈 때 컴퓨터 모니터에 본명이 나온다. 보일 뿐 호명되진 않는다.
엄마를 엄마로 둔 이유는 흔한 보통명사 안에 관객들이 자신의 엄마를 투영할 수 있도록, 고유명사로 바꿀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원작에서도 그린과 레인의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엄마 성격상 그린의 본명을 잘 지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린과 레인은 자신들이 어디선가 지은 듯한 이름을 부르는데 그게 멋있었다."
- 원작과 엔딩이 다르다. 횡단보도에서 동성 연인처럼 보이는 이들을 보고 엄마가 웃는 모습으로 끝난다. 새롭게 결말을 구성한 이유가 있나?
"원작은 장례식장에서 끝이 난다. 처음엔 장례식장에서 끝나도 엄마의 미세한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니터링을 받아보니 엄마의 변화가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아 횡단보도 장면을 보충 촬영해서 붙였다.
그 횡단보도 장면에서 현수막이 등장하는데, 아직 이걸 발견한 관객이 없다(웃음). 소성욱·김용민씨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에서 이기면서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를 많이 보냈다. 그래서 우리도 관련 내용의 현수막을 만들어 뒤에 걸어놨다."
(2020년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김용민씨의 배우자 소성욱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동성 부부'임을 밝혔고, 성별이 기재된 서류도 제출했다. 하지만 관련 기사가 올라오자 돌연 8개월 만에 등록을 취소했다. 이에 소를 제기해 2022년 1월 1심 패소, 2023년 2심 승소, 2024년 7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 지난 21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는 등 한국 사회에서 '정상 가족'에 대한 개념에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21대 국회 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에 천막을 설치했는데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참여해서 같이 공부를 했다. 그전까지 나도 '정상가족'에 포함된 사람이었는데 집회에 가서 공부를 많이 했다. 어느 관객과의 대화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안가족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대안'이라는 말을 들었다. 가족의 대안이라고 할 만한 게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재희와 레인이 집에 들어오고 장례식장에서 그린과 레인의 동료들이 재희의 마지막을 지켜주는데 이는 가족의 대안으로서 '공동체'다.
소설이 2017년에 나오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영화는 2024년에 개봉했다. 그 사이에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고 소성욱·김용민 부부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제작사 대표랑 '우리 영화가 올드해지는 거 아닌가'란 걱정도 했다(웃음). '정상가족'에 대한 내 감각이 제도권 안의 분위기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가 소수이고 다수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괴리감도 느낀다."
"예산 삭감으로 영화인 씨 말리려는 건지... 마음 복잡하다"- 상영관을 찾기 쉽지 않았다. 서울은 그나마 몇 군데 있지만 그 외 지역에선 정말 어렵다. 독립영화 현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3대 브랜드) 3450개의 스크린 극장이 있는데 1% 스크린도 배정받지 못한다. 독립예술영화관에서도 해외 예술영화를 많이 상영한다. 독립예술영화관 입장에서는 수익을 내서 유지해야 하니 이러한 불균형이 반복된다. <딸에 대하여>도 처음에 상영관을 받았는데 오전 7시 20분, 이런 시간이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이다.
최근 나온 '딸에 대하여', '장손', '해야 할 일' '그녀에게' 등 4편의 독립영화는 결코 만듦새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다. '장손'은 스펙터클에 놀랄 거다. 그래서 이 네 작품이 그나마 극장에 길게 걸릴 수 있도록 나름대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영화 제작도 어려워지고, 창작해도 보여줄 기회가 적다. 영화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지원을 받으면 연말 안에 개봉을 해야 해서 하반기에 개봉을 기다리는 독립영화가 많다. 게다가 한국 영화 자체도 어렵다. 매체 환경이 변해 극장을 찾지 않는 시대라서."
- 최근 서울독립영화제 예산 삭감으로 영화인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서명을 받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예산 삭감으로 영화인들 씨를 말리려는 건지, 마음이 복잡하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관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관객을 만나려면 작은 영화들의 경우 영화제가 필요하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졸업 작품을 찍어야 하니까 매년 1000편 가까운 작품이 쏟아진다. 이 작품들이 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여기서 호응이 좋으면 수상을 하고 개봉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같은 처지에서 같은 고민하는 동료들을 영화제에서 만난다.
극장에 가면 상업영화가 주로 있지 않나. 예산이 적은 많은 영화들이 개봉조차 하지 못한다. 독립영화를 보러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도 있고. 영화제는 관객이나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소통 창구다. 영화제조차 없으면 영화의 세상은 더 좁아질 것이다.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박상환 작가
〈월간참여사회〉 보러 가기!본 인터뷰가 포함된 〈월간참여사회〉 11월호는 다음 링크를 통해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pp21.org/XFSM7R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11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