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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일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1-20
동그란의 마음극장 ‘구룡성채: 무법지대’영화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한 장면. 홀리가든 제공
오랜만에 홍콩 영화를 보는데 시작하자마자 가슴이 철렁했어요. 아주 오래전에 알았던 친구를 작정하고 만난 기분이랄까, 버리고 떠난 고향을 다시 방문한 느낌이랄까, 아주 묘했거든요. 아직은 별 취향이랄 게 없던 십대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리다 접하게 된 것들이 있잖아요. 그게 아직도 내 안에서 죽지 않고 자기들끼리 골목길이 되고 개천이 되어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무심결에 흘러간 가요 한자락을 흥얼거릴 때가 그렇고, 홍콩 누와르의 포스터를 보게 될 때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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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난무하는 복수극의 와중에 남자들의 뜨거운 의리가 특유의 비감을 자아내는 그 장르의 공식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의아해하다가도,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알 수 없는 후련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곤 했지요. 두려운 세상이고 알 수 없는 삶이기에 그토록 강렬한 영상의 표현에 넋을 놓았고, 그러고 있던 시간이 휴식이었을 거예요. 낡은 비디오데크에 매달려 현실의 불안을 잊던 시절의 추억과 연결하기에는 <구룡성채>는 좀 다른 세계이긴 해요. 홍콩 누와르가 풍미했던 세월을 진지하게 오마주하면서도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줘요.

영화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한 장면. 홀리가든 제공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절차
주인공 찬록쿤은 바다 건너에서 밀항해 홍콩으로 들어왔어요. 가짜 신분증을 만들려다 갱단에 당하고 그들과 싸우다 우연히 구룡성채로 흘러들게 되지요. 지금은 구룡성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지만 1993년에 철거되기까지 수만의 사람들이 밀집해 살았던 거대한 건물입니다. 집이자 노동 현장이던 이 거대한 공장에는 신분증이 없어도 의지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죠. 찬록쿤은 그곳의 어느 귀퉁이 초라한 처마 밑을 거처 삼아 밤낮 없이 일을 합니다. 돼지고기 염장, 어묵 빚기, 가스통 배달 등 성실하게 일하던 어느 날, 구룡성채의 관리인인 사이클론이 다가와 고기덮밥을 사주고 다락방을 내어주며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었지요. 사이클론의 수하인 신이와 에이브이(AV), 십이쇼라는 친구와 형제처럼 지내게 돼요. 그리고 찬록쿤은 이곳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어요.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를 떠돌며 불안하게 살아왔다는 그는 구룡성채에 받아들여지면서 불면증이 없어졌다고 했어요. 힘들게 번 돈을 친구들과의 마작 한 판에 다 잃어도 아깝지가 않았어요. 찬록쿤이 구룡성채에서 자리를 잡아 살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이방인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절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자신의 의지를 보여줄 성실의 증명, 그리고 힘들게 이룬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방식으로 신의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죠. 이것은 어느 세계에나 마찬가지로 통하는 원칙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한 장면. 홀리가든 제공
인생을 마무리하는 절차
주인공 찬록쿤을 지켜보고 받아들여 준 사이클론은 구룡성채의 관리인입니다. 30년 전 이 구역을 차지하기 위한 갱단의 혈투 끝에 레이 수하의 추, 타이거, 사이클론이 평정하게 되었는데 이때 추는 아내와 자녀들을 잃었고 타이거는 한쪽 눈을 잃었으며 사이클론은 형제와도 같은 찬짐을 잃었습니다. 성 바깥에는 미스터빅(홍금보) 일파가 호시탐탐 구룡성채를 접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고 홍콩의 중국 반환 문제와 함께 구룡성채도 언제 철거될지 모를 불안함에 휩싸여 있습니다. 정작 구룡성채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추는 복수 말고는 관심이 없죠.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죽인 찬짐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아들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바로 찬록쿤이었던 겁니다. 한때는 한 형제였던 이들도 자신의 복수심과 사적 이익 때문에 서로를 위기로 몰아갑니다. “우리 세대 일이잖아.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 사이클론은 줄곧 이렇게 말하지만 추의 귀에도 미스터빅의 귀에도 들리지 않죠. 결국 사이클론은 스스로 문을 닫고 빗장을 걸어 수하들이 자신을 돕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희생의 최후를 맞이합니다. 어떤 리더는 여전히 자신이 움켜쥘 것에 집착하고, 어떤 리더는 놓아버려야 할 것을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보다는 치워줘야 할 것이 더 많을 거예요.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사이클론처럼, 자기 자리를 이어받을 후배에게 미안해하며, 자기 세대의 어리석은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낼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어요.

그 오랜 반복을 끊을 수 있을까
사이클론의 희생 덕분에 찬록쿤의 친구들이 찬록쿤을 구룡성채 바깥으로 빼내는 데 성공하는데요, 참 아이러니하죠. 구룡성채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살길이 열린 찬록쿤인데 그곳을 다시 빠져나오기 위해 그토록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된다니요. 찬록쿤이라는 무등록자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사이클론은 목숨을, 그 수하 셋은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입어야 했습니다.(구룡성채에서 빠져나온 찬록쿤은 곧바로 경찰서에 끌려가는데 거기서 출생기록을 찾아주고 신분증도 만들어주었습니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구룡성채 위에서 네 명의 친구들이 홍콩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이제 이 친구들이 구룡성채 최후의 승자가 되었죠. 담배를 나눠 피우며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영화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한 장면. 홀리가든 제공
사실 구룡성채 안의 사이클론과 구룡성채를 넘보던 미스터빅을 죽게 만든 것은 담배였다는 이야기에요. 줄곧 운명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습관이죠. 한때는 둘도 없는 형제를 죽이게 하는 조직, 의리, 명분 그 모든 것은 허울일 뿐이라는 이야기. 마음의 병을 담배로 달래며 살아온 시간이 그들을 죽인 겁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이 선배들의 나쁜 습관을 시작하면서 그들의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하게 될 거라는 암울한 이야기인 거죠. 어쩌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금연인지도 몰라요. 오래된 나쁜 습관과의 단절. 그걸 해낼 수 있겠느냐고 내 마음에게 묻게 돼요. 고통받는 심장을 쓸어가며 담배를 피워대던 미스터빅의 모습, 죽어 남긴 흔적이 빈 담뱃갑뿐이던 사이클론의 떠난 자리를 잊을 수 없을 거 같아요.

영화 칼럼니스트 이하영 ha02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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