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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영화의 종언을 마주하며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1-21
클로즈 유어 아이즈‘클로즈 유어 아이즈’(2023)는 우리 시대 또 다른 버전의 ‘시네마 천국’(1988)이다. ‘햇빛 속의 모과나무’(1992) 이래 단편만을 작업하며 은둔해 왔던 과작의 대가 빅토르 에리세가 31년 만에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벌집의 정령’(1973)의 아역 데뷔 이래 스페인 영화계의 명배우로 성장한 아나 토렌트도 반세기 만에 재회해 일익을 거든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한 장면.이 복귀작은 ‘벌집의 정령’과 ‘남쪽’(1983) 단 두 작품만으로 각인되었을 인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자연광을 섬세히 다루는 회화적 영상미는 여전하지만, 소녀의 시점에서 본 어른들의 세계, 스페인 내전과 엮인 현대사의 불안한 풍경은 전면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다만 역사에 관한 영화라는 점만큼은 공통된다. 영화감독 겸 소설가인 미겔의 소지품 중에 보이는, 페이지를 넘기면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6)이 재생되는 플립 북은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지닌 고고학적 열정의 작은 증거이다.

TV 프로그램 섭외를 계기로 미겔은 한 시절을 풍미한 명배우이지만 촬영 도중 홀연히 행적을 감춘 친구 훌리오의 진실을 찾아 나선다. 그의 동선을 따라가며 보게 되는 세계에는 낡은 과거의 흔적만이 가득하다. 편집 기사 친구 막스의 집은 필름보관소이고, 훌리오의 딸 아나는 박물관 큐레이터이며, 훌리오와도 잠시 사귀었던 옛 연인은 낡은 피아노를 소중히 여기며 젊은 시절의 노래를 부른다.

매끈한 젊은이의 얼굴 반대편에 덥수룩한 수염의 노인을 배치하는, 야누스를 떠올리게 하는 대리석 흉상의 상징적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 영화 안과 바깥의 현실을 불가분의 관계로 놓는 상호 침투성과 수미쌍관의 구조를 암시한다.

영화 속 영화로 훌리오의 마지막 출연작 ‘작별의 눈빛’을 보여주는 액자식 구성의 도입부. 프랑코의 독재를 피해 망명한 한 남자가 오래전 생이별한 딸을 찾아달라는 유대인 노인의 의뢰를 받아들이는 극중극 상황은 훌리오의 기억을 찾는 미겔의 여정과 겹쳐지며, 유일한 단서인 중국 소녀의 사진은 수도원에 몸을 의탁한 노인 가르델이 곧 훌리오 본인임을 입증하는 증거이자 기억을 환기시키는 오브제가 된다.

22년 전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훌리오에게 일깨우고자 안간힘을 쓰는 미겔의 노력은 폐업한 영화관을 다시 열어 ‘작별의 눈빛’을 상영하는 걸로 귀결된다. 두 통의 필름 릴만 남은 이 영화가 실은 중간 과정의 내용만 없었을 뿐, 대리석 흉상의 양면처럼 도입부와 결말은 완성되어 있었음이 밝혀지고, 오래전 배우였던 자신의 모습이 담긴 필름의 이미지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순간, 가르델의 눈동자는 글썽일 듯 흔들린다. 그렇게 남겨져있던 필름은 기억의 대응물이 되어 존재를 되새기고 죽어있던 배우의 정체성을 소생시킨다.

필름 자체와 동일시되던 영화의 시대는 기울어가지만, 그 경험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기억은 잃었어도 매듭을 묶는 감각만큼은 간직하고 있던 훌리오의 손길처럼 현대인의 잠재의식 속에 영화는 존재하며, 눈 감고 외면하더라도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섣부른 희망을 말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종언(終焉)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쇠퇴할지언정, 낙담해서 영영 작별을 고해선 안 되는 것이다. 영화는 아직 미완의 가능성이기에. 이 전언(傳言)을 위해 빅토르 에리세는 오랜 침묵을 깨고 돌아온 것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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