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서워서 진행을 포기하고 싶으시면 ‘관람 포기 비상벨’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직원이 모시러 올 거에요.”
얼마나 무섭길래 ‘스톱 버튼’까지 마련했을까. 폭염에 지친 올 여름, 도심 한가운데 ‘특유의 기괴함’이 가득한 이토 준지의 작품 속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소용돌이’ ‘소이치의 저주일기’ ‘토미에’ 등 공포만화 거장 이토 준지(伊藤潤二)의 세계관이 홍대에서 펼쳐진다.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 공포체험을 완주한 관람객들이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 ‘덕스’에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의 몰입형 체험 전시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를 거쳐 드디어 서울에 상륙했다. 실감나는 몰입감 덕분(?)에 전시는 14세(중학생) 이상부터 관람할 수 있다.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는 ‘복수의 마을’을 지나 ‘악(惡)의 계곡’으로 이어지는 2개의 공포 체험과 1개의 전시로 구성됐다.
소문의 호러하우스를 경험하러 홍대로 향했다. 이토 준지의 파워는 대단했다. 평일 오후에도 이미 티켓은 ‘솔드아웃’이었다.
전시를 주최한 웨이즈비 관계자는 “7월 주말은 이미 모두 매진이고, 평일 오후도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매 회차별 30~50명이 입장한다.
이토 준지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 실제로 다녀온 사람들의 호평, 여름더위를 물리치기 딱 좋은 콘텐츠, 대학생들의 여름방학등이 모두 힘을 발휘했다. 1987년에 태어났지만 여전히 요즘 젠지 세대에게 인기 있는 ‘토미에’의 팬들도 눈에 띄었다.
관람객들이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 티켓을 수령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6명이 한 팀이 돼 밧줄을 잡고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이다보니 티켓을 구입해도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내내 체험관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호러보다 옆사람이 소리지르는 게 더 무서운데’, 근심이 커진다. 하루 평균 3~4팀이 관람 중 중도 포기 버튼을 누른다고 한다.
입장 차례가 되면 이토 준지 작품 속 캐릭터의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선물받는다. 이번엔 말썽꾸러기 ‘소이치’를 골랐다. 체험이 끝나고 원화가 나오기 전까지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어렵다는 안내를 받고 드디어 입장!
암흑처럼 까만 공간 속에서 이토 준지의 작품 속에서 봤던 배경과 인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들어가면서부터 팀원들과 함께 (초면에) 분신사바를 해야 한다.
복수의 마을에선 ▲지붕 밑의 머리카락 ▲장서환영 ▲터널 괴담 ▲토미에 ▲견디기 힘든 미로가 기다린다. 악의 계곡은 ▲신음하는 배수관 ▲머리 없는 조각상 ▲소이치의 애완동물 ▲목매는 기구 ▲괴롭히는 아이로 꾸려졌다.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 전시존 전경. 웨이즈비 작품 속 캐릭터로 변신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공포감이 극대화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분장까지 작품 속 인물과의 싱크로율과 일치한다. 관객에게 직접적인 터치는 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관람시간은 약 15분.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다만 스톱 버튼이 가장 많이 눌려지는 곳은 ‘머리 없는 조각상’이라고.
이밖에 밧줄이 주르륵 내려오듯 연출된 공간, 미로 등 대놓고 ‘기분이 꿉꿉해져라’ 기획의도가 보이는 공간 연출이 일품이다. 이토 준지의 세계관의 기괴한 오싹함을 현실로 싣고 온 듯하다.
6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다보니 현장에서 당일 처음 만난 사람들과 조를 이뤄 가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어떤 멤버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끊임없이 비명이 나오기도 하지만, ‘덤덤한’ 멤버들과 함께하다보면 조용하게 지나갈 수도 있다.
기자의 경우 초면의 사람들이 모였다. 무서워 잘 걷지 못하는 선두에게 “가보자, 가보자” 독려의 멘트가 터졌다. 매 코너에서 이어지는 독려에 “앞뒤 자리 바꿔주셨으면”이라는 말이 나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실제 전시 관계자에 따르면 들어갈 때와 나갈 때 선두와 후발주자가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드디어 ‘완주 성공’ 문구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시면 마음껏 촬영해도 좋다’는 안내와 함께 이토 준지의 원화를 만나볼 수 있다. 실물처럼 제작된 작품 속 조형물도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전시를 위해 그린 신작과 애니메이션 초안 원고 등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자료들이 기다린다. 자신의 작품 속 의미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인터뷰 영상도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굿즈는 못 참지’. 이토 준지의 팬들을 위해 굿즈숍이 기다린다. 토미에가 그려진 하트 모양 손거울이 가장 인기인데 애초에 다 팔렸다.
전시에서 빠질 수 없는 굿즈숍. 정희원 기자 굿즈 쇼핑 후에는 토미에와 인생네컷에서 사진도 찍고, 이토준지 작품을 녹인 스페셜 메뉴를 판매하는 카페도 들러보자. 여름에 어울리는 ‘빨려 들어가는 빙수’도 추천한다. 전시로 서늘해진 기분을 빙수로 달콤하게 이어갈 수 있다.
‘빨려 들어가는 빙수’의 리얼한 비주얼. 빙수엔 다리가 거꾸로 꽂혀 있는데... 사진=정희원 기자 한편, 이토 준지는 현재 공포만화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작가다. 단편부터 시리즈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글로벌 마니아층이 두텁다. 한국에서도 ‘이토 준지 걸작집’, ‘이토 준지 공포만화 컬렉션’ 등 출판으로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다수의 작품이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됐다. 지난해 넷플릭스에 공개한 ‘이토 준지 매니악’도 이목을 모았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 부터 오후 7시.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