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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공장 사라진 자리에 들어온 것... 중국에 터 잡은 개미들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13
[김성호의 씨네만세 850]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팬텀 슈가>중국 광동엔 순더 설탕공장이 있다. 보다 정확히는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이미 망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중국 근대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던 이 설탕공장은 당시 첨단이던 체코 생산설비를 가져와 경쟁력을 키웠다. 인근엔 사탕수수가 무성하게 자랐고, 이를 바탕으로 설탕을 생산해 전국으로 공급했다. 한국의 제일제당이 그러했듯 발전한 세상에선 설탕 소비량 또한 크게 늘어나고, 이를 공급할 기업도 필요해지는 것이니까.

그 공장이 이제는 사라졌다. 사탕수수는 여전히 잘 자랄 만하고 자국 내 설탕 수요 또한 어마어마하지만 기업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이미 세계화된 무역환경 속에서 가격경쟁력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미 임금이 꽤 상승해 있는 중국의 노동 환경 가운데서 기업이 버텨나가기 어려웠다는 점 등일 테다. 그리고 어느 중국인은 여기에 더해 하나의 이유를 더 드는 것이다. '세계화된 초단타 매매 환경 속에서 이 공장은 폐허로 전락했다'고 말이다.

순더 설탕공장이 문을 닫은 이유로 농산물에 대한 국제적 자본의 초단타 매매를 든 이는 중국 출신 영상감독 차오 슈다. 그는 순더 설탕공장이 버려진 채 폐허로 변해가는 과정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나 보다. 제 직업을 비디오 아티스트라 말하는 이답게 카메라를 들고 공장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려 든다. 그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 팬텀 슈가(Phantom Sugar) >, 직역하자면 설탕유령이 되겠다.

▲ 팬텀 슈가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경계를 확장하고 관점 열려는 시도

<팬텀 슈가>는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익스팬디드 섹션 초청작이다. 익스팬디드는 확장이란 뜻으로, 영화의 경계를 탐색해 기존보다 영상예술이 나아갈 수 있는 지평을 넓힌 작품을 모아둔 섹션이라 하겠다. 영화제 측은 이에 대하여 '미학적 관행의 경계를 시험하고, 영화가 다른 매체와 비정형적으로 관계를 맺는 현대의 트렌드를 관찰하여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여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며 '제시된 작품의 맥락과 다양성은 확고하며, 무엇보다 사회적 규범과 예술의 규율에 도전하면서 확장을 위한 포괄적인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다'고 그 의미를 전했다.

그렇다면 <팬텀 슈가> 또한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작품이란 뜻이겠다. 도대체 어떤 시도로써 영화적 경계를 확장하고 관객의 관점을 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해진다. 이번 영화제에서 익스팬디드 섹션 작품군을 찾아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실험영화는 난해하다는 선입견을 넘어 꿋꿋하게 경계와 인식의 지평을 열기 위해 도전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 영화제가 아니라면 이룰 수 없는 만남을 기대한 것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낯설다. 비디오 게임과 3D 디지털 이미지에 강점이 있다는 감독답게 연출에서부터 이색적인 인상이 적잖이 묻어난다. 배경은 앞서 적은 순더 설탕공장 부지다. 내래이터가 이 공장과 얽힌 사연을 들려주는 동안 화면은 공장부지를 살핀다. 드론이 높은 곳에서 폐허가 된 공장을 조망한다.

▲ 팬텀 슈가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버려진 공장, 사라진 인간... 남은 건?

한때는 공장이 일대의 번영을 이끌었다. 체코산 생산설비가 들어왔고, 거기에 딸려 그 일대에 살던 개미들도 옮겨왔다. 그 개미가 중국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균류를 번식시키고 사육하는 과정에서 토지가 비옥하게 됐다. 사탕수수 농장은 더욱 잘 되었고 개미들 또한 번성했다. 요약하자면 뭐 그런 이야기다.

한때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던 부모를 둔 자식의 이야기처럼 전개되는 영화인데, 어느 순간 본색을 드러낸다. 마치 반전처럼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 관객을 당혹게 한다. 가만 보니 인간이 사는 세상은 이미 끝난 듯 지역 전부가 폐허다. 그 사실이 시놉시스를 보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제작자들은 시놉시스를 이렇게 적어두었다. '사탕수수 생장을 관리하는 인공지능 드론이 있다. 인류는 이미 오래전 멸종했지만, 이 드론의 임무는 여전히 모든 우발적 요인을 제거하고 식물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어느 날 개미와 마주친 드론은 첫 순찰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은 20세기 집단주의 몰락 이후, 세계화된 정밀 예측 행동으로 인해 파괴된 설탕 공장에 대한 회상이다'라고. 그렇다면 이건 인류가 멸망한 이후의 세계가 아닌가. 설탕공장부지에 살아있는 거라고는 움직이는 개미들뿐이다.

▲ 팬텀 슈가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술로 구현한 영상의 낯선 효과

감독은 그 개미를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독특하게 잡아낸다. 실사촬영도 물론 진행했지만, 게임엔진을 활용한 렌더링을 적극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개미들이 연이어 움직이고 그 광대한 굴 안에 첨단 스마트농업 못잖은 환경을 이룩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담긴다. 마치 과거 인간이 사탕수수를 수확해 설탕을 생산했듯,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개미가 또 다른 문명을 이룩한 것 같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마치 공룡이 멸종하고 그 자리에서 인간이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듯이.

가만 보면 드론의 시각은 그저 영화를 촬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드론은 하늘 높이 날아 폐허가 된 부지를 조망하기도 하지만, 공장 구석구석을 오가며 버려진 기계와 일하는 개미 또한 담아낸다. 인간이 살아있던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드론은 영화 속 이야기와 바깥의 관객을 잇는 화자가 된다. 그 드론이 사실상의 내래이터이며, 그가 잃었다는 어머니는 바로 인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기계를 낳았으나 그 기계를 지키지 못하고 떠나니 버려진 기계는 의미 없는 목적만을 지키고 살아갈 뿐이다.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소개한 익스팬디드 섹션 작품들은 하나하나 보는 이의 감각을 낯설게 깨우는 작품이다. 쉬이 이해할 수 없는 구성과 서사를 가진 작품들은 관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듯 제멋대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도리어 의식과 감상이 곤두서니, 바로 이것이 실험영화의 긍정적 가치가 아닌가 한다.

물론 곤두선 감상으로도 제 의미를 충실히 읽어내기 어려운 작품이 적지만은 않다. 실험영화가 영화를 실험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실험하는 거라는 비아냥이 유효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아마도 이것이 실험영화를 만드는 이들을 고민케 하는 지점이리라고 여긴다. 다큐멘터리가 실험영화를 끌어안고 그를 제 일부로 받아들여 관객과 만나도록 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 매체와 기술, 관객과 만나는 여러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다른 어느 분과보다 다큐와 다큐인에게 간절하기 때문이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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