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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독이 서로 다르게 쓴 심은경은 이랬다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20
[김성호의 씨네만세 858] 29회 부산국제영화제 <더 킬러스>하늘 아래 온전히 새로운 건 없다고 했다. 창작이란 다른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마련이란 뜻이겠다. 자연과 사물로부터 영감을 받을 때도 있지만, 상당수는 다른 인간, 나아가 특정인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작가와 작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긍정적 관계는 많은 창작자가 꿈꾸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다른 창작물을 모티프 삼아 새로운 작품을 내는 일은 작가의 세계를 확장하고 창작욕을 고취시키는 효과적 수단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저 유명한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살인자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건 유명한 이야기다.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게 오로지 호퍼 뿐은 아닌 모양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감독들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많은 뛰어난 작가를 자극한 작품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여기 네 명의 감독들이 '살인자들'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모티프로 짤막한 이야기를 찍어내기로 한 건 그러한 이유에 공명했기 때문일 테다. 네 감독이란 김종관부터 노덕, 장항준, 이명세로, 각기 한국영화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거나 만들어 나아가는 중인 이름 있는 창작자들이다. 이들이 각자 만든 단편을 엮어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가 만들어지니, <더 킬러스>가 바로 그 작품이다.

▲ 더 킬러스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독특한 스타일 가진 네 감독의 옴니버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초청한 <더 킬러스>는 모두 세 차례 상영기회를 얻었다. 매 상영마다 관객이 가득 들어찰 만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해당 섹션은 동시대 한국영화의 흐름과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항목으로, 그해 극장을 통해 공개될 최신작이 주를 이룬다.

영화는 김종관부터 노덕, 장항준, 이명세의 순서로 단편을 이어간다. 서로 다른 스타일이 인상적인 이들 감독 중 첫 주자는 김종관, 한예리 주연의 <최악의 하루>, 정유미와 정은채 등이 출연하는 <더 테이블> 등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의 작품이 영화제에 소개될 때마다 국내외 관객들에게 꽤나 큰 화제를 모으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재기넘치는 구성과 대사들이 관객이 기대치 않았던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탓일 테다.

'변신'은 등에 칼을 맞은 한 사내(연우진 분)를 비추며 시작한다. 늦은 시각 사람 없는 골목에서 등에 칼을 맞은 채로 비틀거리던 이 사내가 다시 눈을 뜨니 웬 바에서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것이다. 깜짝 놀라 일어나니 등에 꼽힌 칼은 그대로인데, 눈앞에는 아무 일도 없는 양 바텐더(심은경 분)가 컵을 닦고 있다.

▲ 더 킬러스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상식 부수며 전진하는 이야기

그로부터 빚어지는 이야기는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내용이다. 사내는 제 목에 두 개의 파인 자국, 그러니까 드라큘라 이빨자국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더듬어보지만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던 중 한 쌍의 손님이 가게에 들어서고 그로부터 좌충우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변신'은 말 그대로 몸이 변한다는 뜻이다. 변한다는 건 전과 다른 상태로 화한다는 것이겠다. 전이 칼을 맞아 당장 고꾸라질 듯 비틀대던 인간이라면 뒤는 등에 꽂힌 칼은 신경도 쓰지 않는 다른 존재가 된다. 예상을 얼마 비껴나지 않는대도 김종관 표 아기자기한 전개가 선명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과거 <더 테이블>과 <아무도 없는 곳>에서 김종관과 호흡을 맞췄던 연우진의 연기는 이만한 단편을 이끌어가는 데는 무리 없이 출중하다.

다음은 '업자들'이다. 과거 <연애의 온도>, <특종: 량첸살인기>를 통해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은 노덕의 작품으로 여전히 재기발랄한 솜씨가 살아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야기는 청부살인을 소재로 흘러간다. 남다른 미모의 여자가 잘 차려 입은 중년 사내를 만나 누군가를 죽여 달라 청한다. 유명 대학교 교수로 녹색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는 단서와 함께 그가 주차를 해놓는 구역까지 알려준다. 그리고 건네는 돈은 무려 3억 원, 그것도 착수금만이다.

심각한 스릴러로 흘러갈 듯했던 영화는 이내 좌충우돌 코미디로 화한다. 저희 업체의 전문성을 자랑스레 언급하던 사내가 다른 이를 불러 제 일을 넘기는 것이다. 착수금의 절반이 대가로 건네진다. 그는 또 다른 이를 불러 일을 넘기고 억대였던 비용은 천만 원 대로 급전직하한다. 일을 맡은 사내는 한 눈에 보기에도 초짜티가 역력한 이를 불러다가 일을 맡긴다. 본래 착수금만 3억 원이던 일이 수십 만 원대 조잡한 일거리로 전락한다. 그는 제 친구를 두 명 불러다가 함께 일을 치르기로 결심한다. 한 눈에 보기에도 주머니 사정이 민망한 패거리가 함께 일을 도모한다. 새로 합류한 친구들은 일당 십 만 원 언저리가 고작이다.

▲ 더 킬러스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장르영화 속 비치는 한국적 드라마

외주에 외주, 하청에 하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돈만 깎여나간 게 아니다. 정보도 사라지고 왜곡돼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처음엔 제대로 된 정보가 그럭저럭 있었으나 나중엔 녹색차를 타는 대학교 교수란 것밖엔 아는 것이 없다. 그것도 단서라고 의뢰인이 당부한 주중이 아닌 주말을 찾아 대학교 주차장으로 가니 그곳엔 색깔만 녹색인 어느 차량이 서 있는 것이다. 그 차를 타러 죄 없는 대학교 교직원(심은경 분)이 다가온다.

의뢰인이 안다면 속 터지는 대환장파티가 따로 없다. 전혀 상관 없는 교직원이 청부업자들에게 붙들려서 야산 중턱으로 끌려온다. 죽이려는 이도 긴가민가한 상황이 거듭 벌어지는 가운데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그녀의 노력이 가상한 성과를 거둔다. 독특한 감각으로 극적 재미를 불러오는 시나리오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너무도 현실적인 하청에 하청의 상황들이 각기 가진 자산에 따라 어찌할 수 없는 불균형과 부조리를 불러오는 과정이 현실의 반영인 듯 씁쓸하다.

다음 작품은 희대의 살인마를 쫓는 이들의 이야기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상업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장항준의 작품이다. 아는 건 이름 세 글자에 왼쪽 어깨에 수선화 문신이 있다는 사실 뿐, 얼굴도 인상착의도 모르는 살인마를 베테랑 형사(장항준 분)가 기다린다. 벌써 보름 째 그가 마침내 나타날 어느 가게에 단골처럼 앉아 있는 것이다. 그의 부하(전석호 분)는 가게 바깥에서 잠복 중이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범인을 쫓는 데 지칠 대로 지쳐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
도전적 시도와 파격적 실험

마침내 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 날이다. 가게엔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가운데 관객의 예상을 깬 반전까지 품은 영화가 제 가치를 드러낸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식당의 벽에 걸어두고 그를 반영했다 눙치고 넘어가는 게 과연 장항준의 방식답다 싶다.

마지막은 이명세의 '무성영화'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가장 큰 불만을 토로하는 작품으로, 반대로 말하자면 이명세의 작가적 색채가 가장 적나라하게 녹아든 영화라 하겠다. 제목처럼 무성영화 시대의 유산부터 많은 영화의 레퍼런스가 단편 안에 반영돼 있다. 버스터 키튼은 물론이고 자크 타티, 찰리 채플린의 유산들이 곳곳에 반영된 '무성영화'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낯선 서사와 이색적 구성 가운데 이명세 특유의 미학적 이미지들이 스쳐가는 작품이다.

심은경이 여러 작품을 가로질러 서로 다른 역할로 등장한다는 점이, 또 영화와 별 관련성이 엿보이지 않는 그림과 소설을 모티브로 삼았단 점이, 무엇보다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진 네 감독이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에 묶일 단편을 각각 기획해 연출했다는 점이 흥미를 자아내는 영화다. 그럼에 <더 킬러스>를 보는 건 한국영화에 흔치 않은 시도와 직접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간 만나기 쉽지 않았던 이명세부터 활발히 활동하는 장항준 등의 감독의 현재를 파악하는 것도 <더 킬러스>가 주는 재미라고 하겠다.

시도, 그리고 만남. 영화와 영화제가 관객에게 주는 최적의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나.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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