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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시대정신 거부한 조커, 폭도가 된 군중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24
조커 - 폴리 아 되※이 칼럼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토드 필리스 감독 영화 ‘조커 - 폴리 아 되’ 한 장면.“실체가 있어야 그림자도 있는 법. 그런데 실체가 사라진다면, 그림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 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1980)

‘조커 - 폴리 아 되’(2024)는 짧은 애니메이션 시퀀스로 막을 연다. 리무진을 타고 극장에 도착한 ‘아서-조커’는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하지만, 분장실에서 ‘아서-실체’와 ‘조커-그림자’가 둘로 분리되더니, 그림자가 실체인 아서를 옷장에 가둔 채 토크쇼에 나간다.

더 환상적이고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가상이 실체를 압도하고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의 테마. 무대에서 ‘조커-그림자’가 본인 행세를 하는 상황을 바로잡으려던 ‘아서-실체’는 무대 위에서 세 명의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만다. (‘일루셔니스트’(2011)의 실뱅 쇼메가 담당한) 1940년대 루니 툰의 스타일을 따라 한 이 복고풍의 애니메이션은 영화 전체의 플롯과 핵심을 모두 담고 있다.

실체와 허상 간의 괴리, 그리고 그림자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실체의 비극.

‘조커’(2019)에서부터 살인을 저지르고 범죄자가 된 아서 플렉(호아퀸 피닉스)과 그를 추종하며 폭도가 된 군중의 욕망 사이에는 미묘한 균열과 불일치가 있었다. 고담의 음울한 현실에 짓눌린 대중은 아서를 반체제 투쟁의 상징으로 떠받들며 분노에 찬 그들의 정념을 투사하지만, 정작 아서가 환호에 응답하며 만족감을 표했던 건 혁명이나 전복이 아니라 단지 세상에서 존재의 가‘취’를 인정받길 원하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바람 때문이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속편에서 이 욕망의 엇갈리는 지점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아마도 대다수 관객은 하층 계급의 우상으로 떠오른 조커가 고담시의 질서를 위협하는 뒷세계의 거물로 성장해 배트맨 신화의 일부로 포섭되는 피카레스크 로망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누명처럼 씌워진 조커의 껍데기를 도로 벗겨내고는, 아서를 소외되고 이해받지 못하는 불우한 이웃의 자리로 되돌려놓고자 한다.

결과는 관객과 평단의 빗발치는 야유와 처참한 흥행 성적. ‘세컨드’(1966) 이래 이토록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받고 저주받은 걸작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리 퀸젤-할리 퀸’(레이디 가가)과 ‘아서-조커’의 연인 관계도 동상이몽(同床異夢)이긴 매한가지다. 리가 원한 건 만인의 주목을 받는 조커의 연인이 됨으로써, 본인의 초라한 실체를 감출 허구의 정체성을 창조하고 인정욕구를 채우는 것이지만, 정작 아서의 갈망은 누군가의 반려로서 자신을 온전히 이해받고자 함에 있다.

코폴라의 ‘마음의 저편’(1981)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아서의 내적 심리를 드러내는 뮤지컬 시퀀스의 환상에서 인생의 짝을 만났다는 환희가 점점 불안과 공포로 뒤집혀가는 건 바로 이 괴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커는 더는 등장하지 않는 것인가? 부제인 프랑스어 ‘폴리 아 되’(Folie a deux)가 공유정신병적 장애, 즉 한 사람의 망상적 신념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됨을 뜻하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서는 죽음으로써 조커를 떨쳐내지만, 우리는 리와 재판정 안팎을 에워싼 군중, 주변의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조커가 되어가는 걸 본다.

조커라는 이름의 유령이 온 세계를 배회한다. 이 영화의 실패는 오늘날 조커를 갈구하는 대중의 자기파괴적 정념, 그 시대정신에 영합하길 거부한 결단의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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