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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장르, 아름다움의 모든 방면에서’, 영상화되는 한국문학의 현황. 감독과 소설가들의 과업은?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31


더 많은 한강의 소설이 영화화될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제기된 질문들 한편엔 영화화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도 있었다. 많은 제작사들이 검증된 IP이자 장르적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웹툰만큼 문학계를 주목함에 따라 흥행 소설의 영상화 판권 계약 여부도 전보다 한결 뜨거운 관심사가 됐다. 물론 한강의 소설은 영상화하기 좋은 소설의 전형적인 모델이 아니고 이미 영화화된 바 있는 두편(<채식주의자> <흉터>)은 문학의 영상화가 지양해야 할 참조점에 가깝지만, 근래의 낭보는 <소년이 온다>가 스크린에 탁월하게 옮겨질 수도 있는 가능성 같은 것을 꿈꾸게 한다. 앞서 한국영화계는 장강명의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등 동시대 한국 소설의 영상화라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소화한 듯 보인다. 관객(독자)들은 이제 영화계와 발맞춘 소설가들의 경험을 궁금해하고, 두 매체를 오가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파생된 새 이야기의 조각을 모아보는 부차적인 즐거움을 얻는 일에도 익숙하다.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 이른바 K문학의 성과가 영상화로 이어지는 흐름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Apple TV 에서 이뤄낸 성공에 이어 앞으로 주목해볼 만한 작품은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이다. 취재 결과, 수상이 결정되기 한참 전인 1년여 전, 이미 국내 제작사가 판권을 계약해 글로벌 OTT 플랫폼을 목표로 시리즈화를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평안도의 깊은 산속에서 만난 사냥꾼과 일본인 장교의 만남을 시작으로 반세기에 걸친 인연을 좇는 역사극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를 묘사하는 김주혜 작가의 또 다른 단편 <바이오돔> 역시, 다수의 <HBO> 시리즈를 만들고 1980년대생 한국 이민자 2, 3세로 구성된 미국 제작사 슈퍼프로그가 시리즈화 중이다. 국내외 최신 사례로 보건대 대형 작가의 흥행작을 중심으로 일단 판권을 사들이고 보는 흐름은 지났다. 요즘 제작사들은 장르와 플랫폼, 관객층을 세분화해 국적과 경력을 막론한 폭넓은 작가층에 영상화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곧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한국 소설은

한창 제작 소식을 알려온 한국 소설 바탕의 영화, 시리즈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구병모의 소설 <파과>를 이혜영, 김성철, 김무열 주연의 영화로 옮긴 민규동 감독은 올여름 촬영을 마쳤다. 40년간 청부 살인을 해온 60대 여성 킬러가 육신의 쇠퇴를 마주하는 가운데 만난 사람들과의 처연한 전투를 그리는 작품이다. 배우 이혜영이 주인공 ‘조각’을 맡았는데, 구병모 소설의 옷을 입고 돌아온 <피도 눈물도 없이>(감독 류승완) 속 킬러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배우가 불러낼 영화적 정동을 기대해봄 직하다. <탈주>로 활약한 이종필 감독 역시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영화로 옮긴 <파반느>(고아성, 변요한 주연)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소설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나 이종필 감독의 영화는 동시대로 무대를 옮긴 점이 가장 큰 변화 지점이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다루는 소재를 이어받아, 영화는 사랑할 자신이 없는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결국 서로에게 빛이 되는 관계를 그린다. 임선애 감독이 연출하고 수지, 이진욱이 합류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은 동명의 레스토랑에 실연당한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풍경을 그린다. <세기말의 사랑>을 공동 제작한 위드에이스튜디오가 임선애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을 제안했고 이로써 감독에게는 첫 상업 장편영화 도전작이 됐다. 각본 정비를 마치고 촬영을 준비 중인 임선애 감독은 “흠모하는 소설들을 영화로 옮기고 싶은 욕망이 언제나 있었다. 잘 끝낸 후에, 홀로 기사식당이라도 가서 안도와 기쁨의 조찬을 먹는 게 지금의 꿈”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SF영화의 불황과 SF문학의 호황이 겹친 기묘한 풍경 속에서 김초엽 작가의 <스펙트럼>의 향방은 상징적으로 남을 것이다. 우주탐사 중 조난된 주인공이 외계인과 조우하면서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스펙트럼>은 <벌새> 김보라 감독과의 만남에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제작사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변승민 대표는 “할리우드의 사례를 찾아보아도 레퍼런스가 없을 정도의 독창적인 비주얼과 깊은 여운이 남는 이야기”라는 점을 영화화 추진의 동력으로 삼았다. “현실엔 존재하지 않지만 공감할 수 있는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에 공들이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과 닮았지만 명확히 다른 외계 생명체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 <듄>의 각색가 에릭 로스가 영화 시나리오를 맡은 것으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던 김보영 작가의 소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작가와 출판사측 모두 실질적인 각본 크레딧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SF 멜로인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결혼식을 앞둔 남녀가 서로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흐를 정도의 먼 우주에 떨어지게 되면서 서로 가까워지기 위한 여정을 그려냈다. 원작 소설의 장대한 상상력 위에 할리우드 빅 네임들이 거론되면서 특히 제작의 스케일 면에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프로젝트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 앞서 영화계의 호출을 꾸준히 받아온 김려령 작가의 소설이 이번에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트렁크>는 비밀 업체를 통해 기간제 와이프로 일해온 주인공의 여정을 그린 독특한 결혼 풍자 소설로 배우 공유, 서현진 주연의 시리즈로 탈바꿈했다. 11월 공개 예정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편지를 매개로 펼쳐지는 이꽃님 작가의 청소년 문학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장르만 로맨스>의 조은지 감독(배우)이 영화화한다. 현재 배우 고민시가 유력한 주연으로 물망에 올랐다. 한편 <라스트 스탠드>(2013)에 이은 김지운 감독의 두 번째 영어권 영화는 편혜영 작가의 <홀>을 각색한 작품이 될 예정이다. 교통사고 이후 아내를 잃고 불구가 된 대학교수가 구멍난 기억을 재배열해가는 과정을 그린 섬뜩한 심리 스릴러다. <타임스>가 2016년 최고의 스릴러물로 선정하는 등의 반응에 힘입어 미국 제작사가 김지운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했고, 편혜영 작가의 애독자로 알려진 김지운 작가가 이를 수락했다. 앤솔로지스튜디오와 미국 제작사 K 피리어드 미디어, 이스마일 코퍼레이션이 함께하며, 최재원 앤솔로지스튜디오 대표에 따르면 현재 캐스팅까지 마친 상태로 내년 상반기 크랭크인을 목표로 작업 중이다.

각본 쓰는 감독, 원작 쓴 작가가 공존하는 법

영상화를 기다리는 소설의 작가, 영상화를 준비하는 영화의 감독 모두 각자의 입장과 도를 각개전투로 헤쳐나가고 있다. 대개는 원작자가 자문, 검수하는 수준이지만 이보다 더 깊은 개입을 원할 경우 원작자가 직접 각본가로 나서기도 한다. 단편 <바이오돔>의 시리즈화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라 수식한 김주혜 작가는 시리즈 쇼러너로부터 트리트먼트를 받아 검토하면서 의견을 더하는 정도가 이상적인 역할 분담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국내 실정을 살펴볼 때에도 원작 작가가 시나리오 전반에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스펙트럼>의 경우 개발 초기에 감독님이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작가를 만난 이후에 별도의 협업은 없었다. 제작자로서는 인간 외 존재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건드리는 원작의 주제가 김보라 감독의 세계에서 잘 구현되리라 확신하고 감독에게 제안했다. 이후 오랜 시간 함께 리뷰를 주고받으며 작품을 개발해왔다.”(변승민) 원작자가 직접 시나리오 집필에 협업하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교감은 이루어진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의 임선애 감독은 초창기 개발 단계에서 “원작자(백영옥)와 제작사(위드에이), 시나리오작가(정이안)간 논의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면 인터뷰를 건네받았고, ‘헤어져야 만난다’라는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이종필 감독은 박민규 작가로부터 음악 리스트가 적힌 메시지 한통을 받았고,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종종 음악을 들었다는 리스트를 들으며 그 역시 촬영장으로 향했다는 후문을 남겼다. 소설의 시나리오화라는 형식의 이행을 두고 이종필 감독은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모크>의 각본을 모두 집필한 폴 오스터의 말을 빌린다. “…소설은 의식의 흐름으로 쓴다. 반면 시나리오는 조각 그림을 맞추는 퍼즐과 같다.” 그 역시 일단 소설에 담긴 의식의 흐름을 체화한 뒤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작품 전체를 필사하고, 그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이나 이미지를 펼쳐놓은 채 퍼즐 맞추듯 재배치를 수없이 반복했다.”(이종필)

원작자가 영상화 과정에 각본가로 참여하는 움직임도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돋보인다. <가녀장의 시대> 드라마화와 함께 각본가로 데뷔하는 이슬아 작가, 티빙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에 각본가로 참여하고, 현재 제작 중인 드라마 <믿음에 대하여>의 각본까지 맡은 박상영 작가가 그 예다. 박상영 작가는 원작자로서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장치, 검수 권한 등을 확보하기 위한 고충도 밝혔다. “영상화 과정에 대한 노하우는 출판사들에도 아직 낯선 업무다.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와 시리즈 계약을 할 때 개인적으로 철저히 알아보고 움직였다. 법무법인 담당자를 섭외해 변호사와 함께 계약서를 만졌고 다수의 영상 업계 종사자들에게 컨설팅을 받는 등 작가가 직접 공부해서 부딪쳐야만 했다.” 시리즈의 7~8화를 연출한 김세인 감독도 <대도시의 사랑법>이 “원작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좋은 사례”라는 점에 동의했다. “원작의 감성과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을 넘어 허리디스크 통증을 호소하는 박 작가의 에세이와 인터뷰에서 영감을 얻어 고영 캐릭터에 반영하는가 하면, 원작 소설의 문장을 내레이션으로 소화하고 현재와 과거와 교차되며 비선형적으로 흘러가는 구성도 동일하게 흡수했다. 박상영 작가는 원작의 문장이 영상에서 즉각적으로 이해되기에는 다소 어렵고 현학적인 지점이 있기 때문에 더 단순한 문장들로 구성되어야 된다는 의견을 주었고 이 또한 반영했다.”(김세인)

소설 원작과 시나리오의 거리감, 즉 의식적인 영점 조절은 소설의 영상화를 작업하는 모든 연출자들이 거쳐야 할 어려운 관문이다. 여기에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의 각본을 다듬은 김도영 감독의 전언이 유용할 듯싶다. “원작과 어떻게 다르게 만들까 혹은 원작의 메시지와 문체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어떻게 살릴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애초에 이 작품을 내가 왜 좋아했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원작의 무게에 대한 부담에 눌리지 않고 작업할 수 있다. 주체는 나이고, 영화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원작과 밀착한 작업을 마친 김세인 감독도 각각의 장단을 뚜렷이 짚었다. “원작 소설까지 밀접하게 다루다보면 감독이 시나리오를 내재적 관점만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소설과 동시에 파악하게 되기 때문에 영상에 담긴 캐릭터와 사건의 부피, 정보 면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다. 내 경우는 편집 단계에서 극 중 ‘하비비’의 분량이 더 많았으면 어땠을까,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자문해보기도 했다.”

<스펙트럼> 연출의 포부를 밝힌 김보라 감독의 말은 궁극적으로 문학과 영화의 교류가 피워올리는 진귀한 협응에 관한 좋은 대답이 되어준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김보라 감독은 <벌새>의 대사,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를 떠오르게 하는 김초엽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 나아가 관객 자신이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대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영화의 목표로 삼기엔 너무 추상적인 것이 아닌가, 자문할 때도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벌새>에서도 같은 문제와 씨름했었다. <벌새>는 결국 해가 질 무렵의 정서를 전하고자 한 영화였는데 신기하게도 개봉 후 많은 관객들이 해질 무렵의 느낌을 말해주셨다. 창작자가 영화의 의도를 세우고 그것과 깊이 감응하고자 하면, 추상적 감각 또한 영화에 나타나고 전해진다는 것을 <스펙트럼>에서는 더욱 믿어보려 한다.” 화려한 수상 소식, 장르적 경쟁력, 검증된 원작 IP라는 숨 가쁜 말들을 넘어 문학의 작가와 영화의 작가가 호응할 수 있는 진정한 접점은 바로 이런 영역일지도 모른다. 내면과 추상, 문학적 상상력을 기입하는 무대로서 스크린이 지닌 가능성에 창작자들이 반응하고 있다. 그리고 관객 역시, 한국문학의 영화로운 결과물들을 열렬히 기다린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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