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베테랑>은 관객수 1341만명을 동원한 흥행작이다. 행동파 서도철(황정민)을 중심으로 한 광수대의 앙상블 코미디와 생활 밀착형 액션이 호평받으며 대중과 평단 모두를 만족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원래 <베테랑>은 “제작 초기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중고차 절도단을 추적하는 광역수사대의 이야기를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류승완 감독) 다루려고 한 프로젝트였다. 고급 외제차 절도단을 소탕하는 오프닝 신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부당거래>를 만들 당시 만났던 형사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 영화에서 부산항은 “처음 시나리오가 나오고 각색을 거치며 시나리오상의 장소가 수십번 바뀌고 또 바뀌는 와중에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은 장소” (이준규 라인프로듀서)였다. 제작진은 영화 촬영 허가가 잘 나지 않는 북항 신선대부두를 삼고초려 끝에 섭외하는데 성공, <베테랑>의 문을 여는 오프닝 및 일부 장면을 부산에서 촬영했다.
부둣가에서 펼쳐지는 추격신<베테랑>의 부둣가는 이중적인 공간이다. 마치 서부 극의 사막처럼 주변 공간을 넓게 보여줄 수 있지만 컨테이너를 통해 좁은 골목길에서의 추격 같은 상황도 유도할 수 있다.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연출한 코미디는 <베테랑> 초반을 이끄는 성공적인 코미디 중 하나다. 조화성 미술감독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블랙코미디성 추격전을 보여주기 위해 직선적이고 행동의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미로에 갇힌 모르모트 생쥐처럼 인물들이 움직인다. 누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유발된다. 범죄자와 경찰이 골목 길에서 대치하는 대목은 서부극 같다.”(조화성 미술 감독)
안전제일, 부산의 의리!부산항은 부두가 7곳이 넘고 출입이 쉽지 않은 데다 촬영 허가 시간도 제한되어 있다. 광역수사대 전체 대원, 경찰 지원 병력, 외국인 불법거래업자들, 국내 불법거래업자들, 경찰 차량과 시동순찰대 차량, 불법 거래 차량 그리고 100여명의 스태프 전부가 항에 들어가야 하는데 모든 인원이 출입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베테랑>팀에 신선대부두보다 매력적인 로케이션은 없었다. 한편 카메라에 노출되는 컨테이너 상표는 각 통운회사의 허가가 필요하다. 야간 촬영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사측을 설득했다. 촬영 당일에는 전 스태프가 야광조끼를 입고 미리 약속된 동선으로만 이동했고 스태프 차량에 실린 장비 및 소품까지 꼼꼼한 확인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부산 사나이들의 의리! 부산항 촬영을 준비하며 서로 안면을 튼 통운회사 직원들은 부두에 움직이는 크레인과 지게차를 영화에 활용할 수 있느냐는 제작진의 제안도 흔쾌히 수락했다.
<베테랑>만의 액션 스타일을 예고하라“서도철이 3개월 간 위장 수사 끝에 드디어 국제 자동차 절도 매매단을 검거하는, 영화의 시작을 열어주는 에피소드이다 보니 영화의 스케일도 보여줘야 하고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도 담아내야 했다.”(이준규 라인프로듀서) 영화 초반 북항 신선대부두에서 범죄 조직을 소탕 하는 시퀀스는 <베테랑>만의 액션 스타일을 예고한다. <아저씨> 이후 유행했던 화려한 합을 벗어나 과감하게 정반대의 길을 간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이른바 ‘막싸움’식의 액션이 자칫 옛날 방식이라고 싫어하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전한다. 하지만 <베를린> 이후 액션의 잔인성이 높지 않아도 관객이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베테랑>에 중요한 영감을 줬다. “광수대 형사들의 액션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아픔을 보여 준다. 그러다 상황이 역전될 때 오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의도했다.”(정두홍 미술감독)
서도철의 소시민성을 대변하는 경찰서<영화부산> 2015. VOL.15 ‘부산 촬영 클로즈업’ 재구성 및 “‘슬랩스틱코미디를 응용해 나만의 방식으로 액션을 디자인했다’ <베테랑> 류승완 감독 인터뷰”(<씨네21> 1016호)에서 발췌<베테랑>은 “조태오(유아인)로 대표되는 대기업과 서도철 같은 일반 시민의 극명한 대비” (조화성 미술감독)가 중요했던 영화다.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상류층에 맞선 소시민이 결국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 관건이다. 이는 프로덕션디자인 곳곳에도 반영된다. 조태오의 공간은 넓고 기능적으로 필요 없는 물건이 여기저기 사치스럽게 놓여 있다면 서도철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협소하다. 특히 경찰서는 범죄자들에게는 위협적 이지만 “정의 구현이라는 직선적인 목표를 가진 형사들에게는 이들의 주거까지 책임지는 자취방 같은” (조화성 미술감독) 공간으로 캐릭터의 소시민성을 대변한다. 부산 해운대경찰서 에서 찍은 관할 경찰서 신과 비교할 때 이는 좀 더 두드러진다. 관할 담당반장(황병국)과 관할 담당형사(김민재)가 속한 이곳은 “삶의 흔적이 많이 묻어나며 힘든 직장인의 느낌이 강조되는 메인 경찰서와 달리 시스템이 갖춰진 강력수사대의 면모” (조화성 미술감독)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