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 취재진의 전쟁 기록
우크라 민간인 피해 참상 담아
“푸틴에 죽은아이 눈 보여라”
러시아의 침공으로 포위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현장을 취재한 전쟁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러시아군의 폭격 9일째,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 도심의 한 병원에 젊은 부부가 피 흘리는 아기를 품에 안고 다급히 달려온다. 생후 18개월밖에 되지 않은 키릴은 러시아군의 주택가 급습으로 머리를 다쳤다. 의료진 대여섯명이 매달렸지만 이미 멎은 아기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는다. “우리 아들 죽었어요? 왜? 어째서?” 엄마는 절규한다. 며칠 뒤 러시아군의 직격탄을 맞은 산부인과 병원에선 한 만삭의 산모가 위급한 상태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다. 산모는 뱃속의 아이가 숨을 거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의료진에게 “차라리 그냥 죽여달라”고 울부짖는다. 학교 옆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갑작스런 폭격에 다리 한 쪽이 완전히 날아간 16세 일리야도 결국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에서 러시아군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폭격 참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이 6일 개봉했다. 러시아의 침공 직전 마리우폴에 들어간 AP통신 취재진이 전쟁이 발발한 2022년 2월 24일부터 마리우폴을 탈출한 3월 15일까지 20일 동안 목격한 현장을 기록한 것이다. 언론사 중 가장 늦게 마리우폴을 빠져나온 취재진은 목숨을 건 취재 끝에 자동차 좌석 밑에 하드 디스크를 숨기고 러시아 검문소 15곳을 가까스로 통과해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전 세계에 알렸다.
영화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자 AP통신 영상 기자인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의 1인칭 내레이션을 따라 전개된다. “전쟁은 폭발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한다.” 러시아군은 숨통을 조이듯 도시 외곽부터 도심부로 점점 밀고 들어오고, 건물 지하실 등에 숨은 사람들은 러시아군에게 혹여나 들킬까 숨 죽이고 크게 울지도 못한다. “어디로 도망치죠? 소용 없어요. 우릴 전부 죽일 거예요.” 사람들 틈에 있던 한 아이는 “죽고 싶지 않아요”라며 울먹인다. 시신을 치우다 지친 또 다른 의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죽은 아이의 눈과 우는 의사들을 보여 달라”고 호소한다.
머리 위로 총탄이 날아다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카메라는 쉴 새 없이 흔들리며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친 참혹한 피해를 전한다. 물과 전기, 통신마저 모두 끊긴 폐허가 된 도시에서 고립된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저마다 살겠다고 이웃의 물건을 훔치기까지 한다. 그 지점에서 체르노우 감독은 병원에 갇혔을 때 한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전쟁은 엑스레이와 같아요. 인간의 내부가 전부 드러나죠.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지고, 악한 사람은 더 악해져요.”
당시 러시아군은 인도주의적 임시 휴전에 협조하지 않았다. 민간인들이 많은 주택가와 학교, 병원 등이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도시는 쑥대밭이 되고 그때마다 무고한 시민들의 시체가 쌓여나갔지만 AP통신의 현장 보도에도 러시아는 ‘가짜 뉴스’라고 일갈해 분노를 샀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그 거짓말에 대항하는 진실의 기록인 셈이다.
AP통신 취재진은 목숨을 걸고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폭로한 공로로 지난해 미국 퓰리처상 공공보도상을 받았다.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33개 상을 휩쓸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체르노우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트로피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거나 공격하지 않은 역사와 맞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한 아이가 숨죽여 울고 있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