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7TV 3377TV

슈퍼스타 기회 놓친 비운의 배우…‘백 투 더 퓨처’ 잊고 그만의 현실로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12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에릭 스톨츠

1980년대 할리우드 화려한 데뷔
SF 걸작 주인공 캐스팅 정점
“코믹 영화에 안 맞는 연기” 교체
2010년대부터 TV드라마 감독으로
미국 영화배우 에릭 스톨츠가 지난 4월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펄프 픽션’ 30주년 기념 상영회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영화평론가로서 나는 종종 고민에 휩싸인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서 베스트 영화를 선정해달라는 제안이 온다. 그럴 때마다 내 자아는 둘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한다. 세상의 수많은 검증된 걸작들을 고를 것인가. 아니면 소년 시절 내 자아와 취향에 가장 거대한 영향을 미친 영화들을 고를 것인가. 당신이 영화광이라면 나와 같은 고민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솔직해질 것인가. 고상한 척할 것인가. 결국 나의 리스트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루키노 비스콘티 어쩌고 하는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감독들의 제목도 외우기 어려운 공인된 걸작들과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이 마구 뒤섞인 채로 세상에 나오고야 만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 나홍진 감독 인터뷰를 보다가 박수를 쳤다. ‘추격자’와 ‘곡성’의 나홍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감독이다. 오락영화와 예술영화 경계가 가장 흐린, 바로 그 덕분에 세계의 찬사를 받아온 한국 영화의 상징적인 존재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네편을 꼽았다. ‘빽 투 더 퓨쳐’(백 투 더 퓨처·1985), ‘로보캅’(1987), ‘트루 로맨스’(1993),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1984)다. 영화광들만 좋아할 법한 좀 더 고상한 영화를 한편 정도는 선택하리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나홍진 감독은 나보다 한살 위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커스가 지휘하던 1980년대 할리우드 오락영화를 보며 자란 세대다. 소년기 영화처럼 당신의 문화적 취향에 큰 영향을 끼치는 영화는 잘 없다. 나는 나홍진의 솔직한 리스트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봤어도 기억 안 나는 메소드 배우

나에게도 ‘백 투 더 퓨처’는 인생 영화 중 한편이다. 처음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았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타임머신 들로리언이 갑자기 날아가버리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질렀다. 영화가 속편을 예고하면서 끝나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속편이 당연하게 제작되는 요즘과는 달리 1980년대 초만 해도 프랜차이즈 시리즈라는 건 몇 없었다. 한동안 나는 ‘백 투 더 퓨처’에 완전히 현혹되었다. 속편이 나오길 기대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주인공 마티 역을 맡은 마이클 폭스가 입고 나온 캘빈 클라인 팬티를 언젠가는 입으리라 다짐했다. 물론 1980년대 한국에 캘빈 클라인 팬티가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쌍방울 정도도 호사였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한 장면. 연합뉴스 아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나홍진이 아니다. ‘백 투 더 퓨처’의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도 아니다. 주연인 마이클 제이(J) 폭스도 아니다. 나는 지금 상당히 고통스러운 할리우드 비화의 주인공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실 ‘백 투 더 퓨처’의 주연은 마이클 제이 폭스가 아니었다. 에릭 스톨츠라는 배우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에릭 스톨츠라는 이름을 아는 분이라면 틀림없는 영화광일 것이다. 그는 영화 좀 아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지만 대중들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그런 배우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남자다.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기억나지만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 그런 배우 말이다. 보통 ‘성격파 조연’이라고 불리는 배우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에릭 스톨츠는 196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자를 꿈꾸던 그는 10대 시절부터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숀 펜이 주연한 ‘리치몬드 연애 소동’(1982)으로 할리우드 데뷔를 이루었다. 이후 그는 데이비드 크로넌버그가 연출한 역사적인 호러영화의 전혀 역사적이지 못한 속편 ‘플라이 2’(1989) 등에서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 배우로서 나름 전성기는 1990년대에 시작됐다. 1990년대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젊고 의기양양한 감독들이 폭력적으로 아름다운 영화들을 내놓던 시절이다. 에릭 스톨츠는 타란티노의 걸작 ‘펄프 픽션’(1994)에서 주인공 빈센트(존 트래볼타)의 친구인 마약상 역할로 꽤 유명해졌다. 미아(우마 서먼)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자 거대한 아드레날린 주사기를 갖고 온 바로 그 친구다. 꽤 재미있는 싸구려 호러영화 ‘아나콘다’(1997)에서 제니퍼 로페즈의 남자친구를 연기한 것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촬영 끝날 즈음 ‘배우 교체’ 날벼락

아니다.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나콘다’에서 여러분이 기억하는 건 신인이던 제니퍼 로페즈의 매력과 허술한 컴퓨터그래픽스(CG)로 만든 아나콘다뿐이다. 제니퍼 로페즈의 남자친구 역할을 맡은 배우의 얼굴 같은 걸 기억하려면 정말이지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여야만 한다. 사실 에릭 스톨츠의 경력은 1990년대 이후로 거의 막을 내렸다. 그는 거스 밴 샌트의 2008년 작 ‘밀크’에 조연으로 출연한 이후 거의 영화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주로 출연하며 할리우드로부터 잊혔다. 물론 그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잔인한 동네다. 한번 잊힌 배우가 다시 조명받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더 웨일’(2022)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복귀한 ‘미이라’ 시리즈의 배우 브렌던 프레이저의 인간 승리에 그렇게 열광했던 것이다. 잔인한 할리우드에서 그런 부활과 복귀는 기적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에릭 스톨츠의 인생은 1984년에서 1985년 사이의 어딘가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백 투 더 퓨처’의 주인공 마티 역에 캐스팅된 순간 대형 할리우드 스타로서의 인생이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고 당대의 떠오르는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가 연출하는 이 공상과학(SF) 코미디는 한 젊은 배우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기회였다. 이제 막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한 에릭 스톨츠의 미래는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탄탄대로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몇달에 걸쳐 ‘백 투 더 퓨처’ 출연 분량을 대부분 촬영했다. 후반 작업을 거쳐 개봉만 하면 에릭 스톨츠의 이름은 할리우드의 전당에 오를 예정이었다. 인생이란 참 이상하다. 최고의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한 순간, 인생은 당신을 전혀 다른 장소로 데려가곤 한다. 절정에서 바닥으로 당신을 내치곤 한다.

촬영이 거의 마무리된 어느 날,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렸다.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서 영화를 새로 찍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문제는 에릭 스톨츠의 연기 방식이었다. 그는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 같은 메소드 배우를 지향하는 젊은이였다. 마티 역할도 매우 진중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백 투 더 퓨처’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코미디 드라마였다. 감독은 에릭 스톨츠의 연기 톤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미치광이 박사 역할을 맡은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에릭은 훌륭한 배우지만, 스크린에 코미디 요소를 실어 나르는 데는 재주가 없었죠.”

인생엔 과거행 타임머신 없어

2001년 1월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서 선댄스 영화제 경쟁작인 드라마영화 ‘태양 뒤의 것들’의 주연배우 에릭 스톨츠(왼쪽)가 동료 출연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로버트 저메키스는 모든 스태프를 불러놓고 말했다. “제가 할 이야기는 모두를 놀라게 만들 겁니다. 좋은 뉴스이기도 하고 나쁜 뉴스이기도 해요. 새 주연배우를 캐스팅해 영화를 완전히 다시 찍을 겁니다.”

새 주연배우는 마이클 제이 폭스였다. 저메키스는 이후 인터뷰에서 이 결정이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에릭 스톨츠는 좋은 배우입니다. 그저 제가 캐스팅을 잘못했을 뿐이죠.” 로버트 저메키스에게 그건 경력에서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다. 에릭 스톨츠에게 그건 경력을 파괴하는 경험이었다. 경력이 파괴당하는 경험이었다. 그는 딱히 그 시절에 대해 회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드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을 뿐이다. “마치 기나긴 겨울을 맞이한 것 같았습니다.”

겨울은 길었다. 아니,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백 투 더 퓨처’는 역사에 길이 남을 상징적인 영화가 됐다. 마이클 제이 폭스는 거대한 할리우드 스타가 됐다. 에릭 스톨츠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스타로서의 경력은 거기서 거의 끝났다. 꽤 좋은 영화들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결코 모두가 기억하는 스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기회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을 바꾸어놓을 기회가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순간,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여러번 오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인생은 여름보다는 겨울이 더 많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여행이다.

나에게는 한가지 원칙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쓴 성공에 대한 책은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책들이 주는 교훈은 하나다. ‘나는 운이 좋아 기회를 잡고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성공에 대한 비밀을 아무리 탐독해봐야 우리가 따라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다만 성공을 하지 않는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에릭 스톨츠는 2010년대부터 텔레비전 드라마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우리가 알 법한 드라마는 거의 없지만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백 투 더 퓨처’ 현장에서 해고당한 기억이 파도처럼 다가와 마음을 아프게 하겠지만,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우리 대부분은 과거의 어느 순간 놓쳐버린 기회를 영원히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인생에는 과거로 돌아갈 타임머신이 없다는 걸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문화평론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THE END
545
로컬 재생 기록 클라우드 재생 기록
로그인 계정
발표
이 사이트는 영구적 인 도메인 이름 TV3377.CC 활성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고 TV3377.CC 에서 응모해 주시면 계속해서 최신 영화와 동영상을 더 많이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