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화려하고 스케일 커진 '글래디에이터 2'…캐릭터는 아쉽네

1편 이후 24년 만에 속편 개봉…막시무스 죽음 이후 로마 그려

영화 '글래디에이터 2'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내 이름은 막시무스. 북부군 총사령관이자 펠릭의 장군이었으며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충복이었다. 살해당한 아들의 아버지이자, 능욕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살아서 안 되면 죽어서라도."

2000년 개봉한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 팬이 '인생 영화'로 거론하는 명작이다. 주인공 막시무스(러셀 크로 분)가 자기 가족을 죽인 황제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를 맞닥뜨리는 장면의 대사까지 줄줄 꿰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흥행 영화의 속편은 전편과 비교당하는 숙명을 타고난다. 20년 넘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의 속편이라면 대중의 눈높이는 더 높고 예리해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글래디에이터' 2편을 연출한다고 발표했을 때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 이유다.

2편은 막시무스가 죽은 지 20년이 지난 때를 배경으로 한다. 시민을 위한 나라를 꿈꿨던 막시무스의 바람과는 달리, 로마는 포악한 쌍둥이 황제로 인해 백척간두에 서 있다. 황제들은 굶주리는 백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복 전쟁을 고집한다.

이야기는 마을을 습격한 로마군에게 아내를 잃고 노예가 된 하노(폴 메스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가 검투사가 돼 콜로세움에 서면서 겪는 일이 스토리의 큰 줄기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2'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편과 비슷한 배경과 캐릭터를 내세운 만큼 신선함은 덜하다. 대신 압도적인 비주얼로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잡아둔다. 87세의 노장이 만든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친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대규모 해상 전투를 보여주며 기선을 제압한다. 수십척의 배가 바다를 가르고 거대한 투석기를 이용해 성벽을 무너뜨리는 장면이 몰아친다. 1편에서 보여준 숲속 전투와는 또 다른, 시원스러운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콜로세움에 서는 상대들 역시 다채로워졌다. 하노는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야생 원숭이부터 코뿔소를 탄 거구의 전사에 이르기까지 '도장 깨기' 하듯 적을 무찔러나간다.

하이라이트는 콜로세움에 물을 채워 넣고 선상에서 벌이는 싸움이다. 물 안에는 식인 상어들까지 있어 긴장감은 배가된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상대를 죽이고 피가 낭자해 눈이 질끈 감기는 장면도 많다. 멋진 액션을 보여주기보다는 오직 살육이 목적인 혈투에 중점을 둬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로마의 냄새가 날 만큼 고증했다"는 스콧 감독의 말처럼, 당시 로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디테일은 살아 있다. 콜로세움은 실제 크기의 60％에 달하는 세트로 직접 지었다. 1천여 명으로 구성된 미술팀은 박물관 등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글래디에이터 2'의 세계를 만들었다. 1편에서 다소 어색한 컴퓨터 그래픽(CG)이 거슬렸던 관객이라면 2편에서는 세밀한 묘사와 화려함, 큰 스케일이 만족스러울 듯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2'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캐릭터와 서사는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황제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는 하노와 대적하기에는 카리스마도, 지략도 부족해 보인다. 1편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코모두스가 광기와 야심, 나약함 등 다면적인 황제의 얼굴을 보여준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인공인 하노 역시 남자다운 얼굴과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지만 1편의 막시무스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막시무스를 추동하는 힘은 복수심이었다.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황제에게 칼을 겨누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아남아 싸움을 이어가는 막시무스에게 관객은 쉽게 동화됐다.

반면 하노는 로마의 재건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운다. 영웅 서사에서 대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요즘 관객의 공감을 사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하노가 막시무스가 남긴 또 다른 아들 루시우스라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뒤부터는 스토리도 다소 헐겁게 나아간다. 무언가 더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갈등은 쉽게 해결되고, 꿈을 향한 루시우스의 싸움은 예상보다 치열하지 않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2'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1편이 남긴 이른바 '떡밥' 때문에 24년간 개운치 않은 기분을 느껴온 관객이라면 그 실마리가 풀리는 것만으로도 관람할 가치가 있을 작품이다.

스콧 감독은 당초 1편이 나온 지 4년이 지났을 무렵부터 2편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초고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8년간 작품을 묵힌 뒤에야 루시우스와 어머니 루실라의 이야기로 방향성을 정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갔다.

스콧 감독은 최근 한국 언론과 한 화상 간담회에서 "많은 사람이 2편이 나오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고 묻는다"며 "속편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작업이다. 많은 사람이 1편보다 별로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13일 개봉. 148분. 청소년 관람 불가.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