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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우울증 문제,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1-18
[넘버링 무비 415] 영화 <연소일기> 영화 <연소일기> 스틸컷ⓒ ㈜누리픽쳐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고 빠르게 잊힐 것이다."

모든 학생이 하교한 뒤에 학교에서 낙서 종이 하나가 발견된다. 현재의 상황을 비관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위험한 신호가 담긴 종이다. 주인을 잃은 문장 앞에서 학교의 선생들이 모여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다. 요즘 아이들이 별나고 가르치기 힘들다는 말부터 입시가 코앞이니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누군지 (알아내는 걸) 참아야 한다는 소리까지. 짧은 유서 속에 담긴 간절한 외침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만 같은 분위기다. 단 한 사람, 정 선생(노진업 분)만이 침묵 속에서 과거의 어떤 장면을 떠올린다.

지금까지 냉담한 태도로 학생을 대했던 정 선생은 유서의 주인을 찾기 위해 아이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은 교권에서 벗어나 있는 학생도, 착하고 성실한 학생도 모두 죽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지쳐있다는 사실이다. 입시 스트레스와 관계의 문제는 물론, 자신만을 바라보는 부모에 대해서도 학생 모두는 작지 않은 우울 속에서 겨우 나아가고 있다. 내일의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생각조차 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그가 떠올린 기억 속에도 그런 소년이 하나 있다.

영화 <연소일기>를 연출한 탁역겸 감독은 홍콩의 떠오르는 신인 감독이다. 2023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4 홍콩 감독조합상에서는 신인감독상까지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 속에 현재 홍콩 사회가 안고 있는 청소년 자살과 우울증 문제를 담아냈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채찍질 당하는 아이들의 현재다. 극 중 소년 요우제(황재락 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비교와 폭력 속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시들어갔던 어린 날의 초상이다.

02.
오프닝 시퀀스의 충격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비밀스럽게 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던 소년은 난간으로 걸어가 걸터앉는다. 그 행동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뇌리에 새겨진다. 조금 음침하지만 고요하고 차분한 프레임 속의 이 불안한 행동을 카메라는 그 모습 뒤편에 고정된 채로 지켜본다. 미들 레벨은 난간에 앉은 소년의 등으로 향한다. 그 순간, 아이는 난간 밖으로 뛰어내린다. 고정된 시선에서는 '자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행동이다.

곧 건물 바깥으로 또 하나의 바닥이 존재한다는 것이 보여지지만, 그곳 역시 안전하지는 않다. 안전망 하나 없이 난간 밖으로 내어진 짧은 구조물. 소년의 걸음으로 4-5걸음만 나서면 바로 추락할만한 아주 위험한 공간. 그 위에서 아이는 자신이 홍콩대에 들어가야만 한다며 울부짖는다. 추락하지 않았지만 이 행위에는 많은 것들이 담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어떤 복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마주했을 때 그렇게까지 생각하기는 쉽지 않지만, 소년은 방금 자신을 죽인 것과도 같다. 어떤 해석 위에서는 이전까지의 자신을 버리고 좋은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극으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프레임을 감도는 톤앤매너를 생각하면, 이것은 분명한 죽음이다. 이미.

소년의 이름이 요우제다. 남들에 비해 조금 뒤처진다는 이유로 학교와 가정에서 끊임없는 비교와 폭력 속에 머물러야 했던 아이. 하필이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동생 요우쥔(하백염 분)으로 인해 더 많은 시달림을 겪어야 했던 소년.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두 가지뿐이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를 쓰는 것과 조금 더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이다. 조금씩 희미해지는 생의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

 영화 <연소일기> 스틸컷ⓒ ㈜누리픽쳐스
03.
"저는 그저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유서의 주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 선생의 현재에는 두 학생이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들로부터 놀림과 괴롭힘을 받는 빈센트. 팔뚝의 오래된 자해 흔적을 감추기 위해 1년 내내 체육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반장 황자이다. 빈센트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고, 반장의 어려움은 지금 해결된 상황이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는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 빈센트를 마주한 정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조차 결과와 해결 방법에만 몰두했을 뿐, 과정이나 그 내면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 선생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소년 요우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둘러싼 모든 어른은 성적과 결과에만 관심이 있다. 기대에 부응하는 동생 유우쥔에게는 모든 특혜가 주어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요우제에게는 가혹한 매질과 외면이 남는다.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천 선생만이 유일하게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보살피던 어른이었지만 그 또한 부모의 강제에 의해 멀어지게 된다. '언젠가는 어른이 되고, 원하던 모습의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던 만화 속 대사는 그렇게 점점 현실로부터 격리된다. 프레임 속에 가득 차 있던 그의 얼굴 너머로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들어오던 장면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컷 하나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경험을 했다.

정 선생의 존재는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는 두 시대를 같은 선상 위로 옮겨오는 역할을 한다. 요우제가 존재했던 과거의 시점이나 빈센트와 반장 황자이가 있는 현재나 사회가 안고 있는 성적 제일주의의 병폐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연결하는 일이다. 유서를 앞에 둔 선생들의 태도나 17살 고등학생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변사체가 되었다는 기사에 달린 '정신력이 약하다'는 비난 댓글 역시 하나의 사회가 시대를 불문하고 공유하는 문제를 확인하는 예시가 된다. 소년이 좋아했던 만화가의 자살 사건이라고 이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법이다.

 영화 <연소일기> 스틸컷ⓒ ㈜누리픽쳐스
04.
동생 유우쥔을 데리고 자신의 비밀기지에 갔던 날 요우제는 완전한 혼자가 된다. 폭력이 유일한 교육 방식이라 믿는 아버지로부터 더 이상 때리는 것조차 당하지 않게 되고, 유일한 보루였던 엄마로부터 비난받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동생에게는 외면당하면서다. 이제 그는 쓸모없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남은 가족이 더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오프닝에서 잔상처럼 남았던 불행한 선택이 현실이 된다.

정 선생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영화는 더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전음처럼 맴돌던 인물들의 목소리가 요우제가 남긴 일기장 안에서 선명해진다. 그가 자신이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때부터다. 누군가의 마음을 듣고 이해하는 일과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대화한다는 것은 가슴을 마주하는 일이며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 또한. 헤어진 아내에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과거의 일들을 모두 고백하는 모습에는 어떤 존재를 더 이상 잃지 않고 지켜내겠다는 다짐이 있다.

영화는 내내 무겁고 침잠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감독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에 다다른다. 사회적, 제도적 해결이 이루어지기 전에, 각자가 가져야 할 행동과 태도의 변화다. 변화를 위해서 모두에게 용기가 필요하다고 이 영화가 말하고 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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