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소식을 듣자마자 만화방으로 달려가 앉은자리에서 <정년이> 단행본을 전부 읽었다.” 매란국극단 연구생 홍주란이 <자명고> 오디션에 합격한 뒤 자신만의 구슬아기를 찾아 헤맸듯 우다비는 주란의 새로운 면면을 살피려 했다. 원작과 다른 궤적으로 그려진 주란을 체화하려면 “일관된 정서”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웹툰의 주란이 “미묘한 분위기 아래 조용히 빛을 숨긴 원석”이었다면 우다비의 주란은 “선하고 선명한 사람이지만 차갑고도 치열한 내면의 싸움”을 지니고 있다. 냉담한 영서(신예은)와 즉흥적인 정년(김태리)도 주란 앞에선 편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화합을 원하고 스스로 융화되려는 주란은 구슬아기를 연기할 때도 고미걸을 받쳐줄 방법부터 고민한다.” 그 때문에 정년에게 함께 연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8화의 고백은 우다비에게 가장 어려운 장면이었다. “너무 아픈 말들이다. 정년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면서도 주란의 일관된 정서를 위반하지 않아야 했다.”
촛대를 맡아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주란을 보며 우다비는 연기를 시작할 때 어머니가 건넨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역할마다 최선을 다해라”던 조언을 떠올렸다. 웹드라마로 데뷔해 <멜랑꼴리아>의 성예린,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2>의 이서이 같은 불안정한 인물을 소화하며 차근히 커리어를 쌓았던 것도 겸손한 열의를 지닌 덕분이다. 올곧고 성실한 태도 뒤에는 새로운 세계와 얼굴을 마주하며 느끼는 깊은 호기심이 있다. 주란을 연기하면서 “착하고 선한 얼굴은 처음”이라던 우다비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도 “명료한 답이 없는 삶을 향해 규격 밖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작품에 빠져 있다”며 <세 가지 색: 레드>에 담긴 우연성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던 인터뷰가 끝난 그날 밤도 그의 SNS에는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속 한 장면이 올라왔다. “작품의 공기를 빼곡하게 채우기”를 꿈꾸는 우다비가 서 있을 다음 프레임은 어떤 풍경일까. 그가 사랑하는 영화와 닮아 있기를 소망해본다.
filmography영화2023 <레디>(단편)
드라마2024 <정년이>
2023 <마에스트라>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2>
2021 <멜랑꼴리아> <멀리서 보면 푸른 봄>
2020 <나의 가해자에게> <라이브 온>
<TRAP> <인간수업> <심야카페>
2019 <트리플 썸>(웹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