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 작가가 인터뷰 후 ‘트렁크 시리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다른 일로도 스트레스받고 우울한 일들이 많은데, 시각적으로라도 밝은 에너지를 주면 좋잖아요.”
보기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는 화사함과 독특한 작품 기법에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사랑받는 작가가 있다. 김지희 작가는 2008년 전통 동양화 기법으로 현대적인 인물을 그린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시리즈를 발표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작가의 그림에는 특징이 있다. 안경을 쓴 여자의 얼굴을 중심으로 화려한 보석 장식이 가득하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볼 법한 천사·여인·범선 등의 그림과 동물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오랫동안 일관된 화풍을 유지하면서 본인만의 브랜드를 구축했다. 한 번만 접해도 ‘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금방 기억할 수 있다.
‘나폴레옹 1세 대관식’이 담긴 키아프 대표작 앞에서 김지희 작가가 인터뷰 사진을 찍고 있다. 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동양화가 기본, 영감은 일상에서
김지희 작가는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다양한 요소로 인해 그림이 마치 현대미술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동양화 작업이 베이스로 깔려있다.
20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카페 겸 작가의 작업실 ‘라운지희움’에서 만난 김 작가는 “전통 종이인 장지 위에 작업을 하고 있다. 안료를 얇게 여러 번 올리는 과정에서 밀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 그 깊이감이 너무 좋다. 그러한 성질은 인간의 삶과도 닮은 것 같다. 스며듦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비슷하다”며 “해외에서 전시를 꾸준히 열고 있는데, 이런 작업이 해외 관람객들에겐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자신의 주된 기법을 소개했다.
그 안에 현대적인 요소를 다채롭게 첨가해 매 전시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카페에 전시돼있는 ‘트렁크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김 작가가 구축한 기본적인 작품 틀에 모서리 마감이 더해져 여행가방 에디션 같은 느낌을 준다. 김 작가는 “트렁크 시리즈는 4년 전에 한 작품이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작업했고, 코너를 마감함으로써 19세기 여행가방을 연상케 한다”며 “여행을 할 때 항상 도전과 설렘이 있지 않나, 그림을 대하는 내 마음이 그렇다. 나의 성향을 함께 보여주는 것 같아 작업할 때 즐거웠다”고 돌아봤다.
이러한 위트는 해외 전시를 할 때 더욱 발휘된다. 김 작가는 현재까지 뉴욕, LA, 워싱턴, 마이애미, 런던, 쾰른, 자카르타, 도쿄, 오사카, 베이징, 상하이, 홍콩, 타이베이, 싱가포르, 두바이 등 국내외 주요 갤러리 및 미술관에서 400여회 전시를 열였다. 올초에는 세계 100대 슈퍼컬렉터 아드리안 쳉이 대표로 있는 중국 선양 K11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장장 4개월간 수십만평 규모의 K11몰 전체를 아우르며 진행했다. 해외전을 준비할 때 항상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 상징하는 동·식물 등을 파악한 뒤 작업물에 담는다. 그렇게 영감을 얻는다.
김 작가는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업들을 추구한다. 파리 전시에서는 500년 미술사를 한국과 연결시켰다. 역사 속 주요 하이라이트 장면을 그려 두 나라를 하나로 잇는 작업을 했다”며 “그 나라의 영험한 동물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지난달 아랍에미리트 샤르자의 셰이크 사우드 빈 술탄 알 카시미 왕자가 방한한다는 소식에 중동에서 신성시하는 동물인 ‘매’를 중심으로 그림을 작업해 선보였는데, 너무 좋아했다. 소장까지 하셨다”고 일화를 공개했다.
김지희 작가가 인터뷰 후 ‘트렁크 시리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그림을 통해 에너지를 주고 싶다”
김 작가는 인간의 삶과 내면에 주목한다. 그림에서 안경을 쓰고 있는 인물, 적당히 미소 짓고 있는 입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 않다. 김 작가는 “안경은 얼굴의 일부를 가리면서도 보이는 소재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소통의 중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소도 감정을 드러내는 데 부담을 느끼는 현대인들을 투영한다”고 설명했다.
배경에 그려지는 화려한 다이아몬드 등 보석은 욕망이다. 그는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며 “작품 안에 있는 꽃이나 나비 같은 미물들은 유한함을 상징한다. ‘카르페디엠’이 ‘순간에 충실하라’라는 의미인데, 순간의 소중함을 알려면 ‘삶은 유한하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매 순간 치열하고 욕망하는 것들을 부정적이기 보다 빛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면 어떨까. 보석을 극한으로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라고 의미를 전했다.
김 작가의 그림은 한없이 밝고 화사하다. 표면적인 부분에서 김 작가는 그림을 통해 활기찬 에너지를 받길 희망한다. 세계적인 부호들도 그의 그림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얻는다. 마카오 카지노 대부 스탠리호의 딸 사브리나호 컬렉션을 비롯해 다수의 글로벌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김 작가는 “살면서 어떤 일로 스트레스받거나 우울할 때가 있고, 가만히 있어도 힘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공간에 걸린 작품이 에너지를 줘야 한다. 주변에서 ‘그림 보면서 힘을 받는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참 보람차다”고 말했다.
◆작품을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고파
화려한 작품으로 홍콩, 대만, 중국 등 중화권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김 작가는 내년 2월 대만의 한 백화점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활동한지 4~5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현지에서 화제성이 높은 인기 작가다. 김 작가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다.
예술을 그림으로만 한정 짓지 않고 다양한 방면으로 표현할 생각이다. 그는 “큰 전시를 하게 되면 미디어나 입체작업 등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니즈가 다양하다. 또 요즘엔 아트숍이 있다 보니 굿즈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며 “그런 니즈를 대하는 데 있어서는 스스로 유연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영역으로 접근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신정원 기자 garden1@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