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D.P.> 지역성과 낭만을 모두 담아김보통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탈영병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의 여정을 따라가는 <D.P.> 시리즈의 정체성은 캐릭터와 호응하는 장소들에 있다. 군대 내 가혹행위에 연루된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들의 역학을 현실감 있게 재현하면서 추격과 도주의 장르적 긴장감, 버디무비의 감수성을 충실히 조화시킨 한준희 감독은 드라마의 진원지로서 로케이션이 갖는 힘을 잘 아는 연출자다. 탈영병을 쫓는 D.P.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을 필두로 동시대 청년의 얼굴을 한 생생한 캐릭터들이 활보했던 <D.P.>의 부산 촬영지를 돌아보았다. 작품의 살림을 책임진 김동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프로듀서, 심혈을 기울여 헌팅한 로케이션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현실감을 채워넣은 배준수 미술감독이 시즌1, 2의 기억을 회고했다.
준호와 호열 콤비가 부산에 도착해 시티버스를 탄다는 설정은, 이들이 도시의 이방인으로서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다니게 될 처지임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배준수 미술감독은 “국내 관광객이 좀처럼 시티버스를 탈 일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선한 그림이 그려진다는 점, 시티버스의 동선을 따라 부산 광안리 일대의 풍경이 시원하게 소개된 점”을 부산 촬영의 미덕으로 꼽았다. 김동민 프로듀서가 부산영상위원회를 통해 시티버스를 섭외한 후 “촬영에 용이한 간단한 밑작업만 마친 뒤 수월하게 촬영”(배준수 미술감독)할 수 있었다.
시티버스 신의 포인트는 구교환 배우가 먹고 있는 어묵바다. 앞서 <블랙팬서>의 한국 로케이션팀을 거치며 부산영상위원회와 협업해온 김동민 프로듀서가 몇 가지 PPL을 제안받은 것. 김 프로듀서는 한준희 감독과 제작팀이 실제로 즐겨 먹었던 삼진어묵을 고민 없이 선택했다. “정말 추운 겨울날이었다. 구교환 배우가 차가운 어묵바를 아주 맛있게 먹어주었다.”(김동민 프로듀서)
극 중에서는 병원 앞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부산대학교 캠퍼스에서 촬영했다. 준호가 상병인 성우(고경표)와 주먹다짐을 하게 되는, “감정적으로 매우 중요한 신”(김동민 프로듀서)이다. 코로나19 상황에 끝까지 섭외가 쉽지 않았지만 부산대학교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일정을 마련해 촬영팀도 빠듯한 촬영 스케줄을 감수하며 로케이션 촬영을 시도했다. 심정적인 장애물을 대신하는 듯한 거대한 시멘트 벽, 오래된 캠퍼스 특유의 분위기가 포인트다. “준호가 성우를 때려눕히는 장면은 CG를 입혀야 하는 설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촬영이었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모든 촬영을 마쳤다. 조명팀도 데이라이트 조명 세팅에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었다.”(김동민 프로듀서)
탈영병 정현민(이준영)을 좇는 호열, 준호의 인상적인 옥상 액션 신이 펼쳐진 공간은 영도의 영성미니아파트다. 제작진은 원래 “빌라 주택가 옥상을 점프하며 돌아다닌다는 컨셉을 구상했다가 실제 주택가 건물들 사이의 간격이 꽤 멀어 현실성을 살리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헌팅지를 재설정”해 영선미니아파트를 찾게 됐다. “4층짜리 아파트가 좁은 간격으로 여러 동이 붙어 있는 구조가 촬영하기에 제격”(김동민 프로듀서)인 데다 영도 바다와 항구가 보이는 아파트라는 점도 로케이션의 분위기를 살렸다. “부산 하면 늘 가던 헌팅지가 아니라 숨겨진 보석 같은”(배준수 미술감독) 곳이다.
휑했던 옥상은 “빨래걸이대, 자전거, 각종 말린 음식들 등 로케이션의 생활감을 배가하는 동시에 액션의 요소로도 활용될 수 있는 소품을 채워넣어”(배준수 미술감독) 완성됐다. 영선미니아파트 촬영을 앞두고 김동민 프로듀서와 제작팀은 한달 동안 몇백 세대에 달하는 주민들을 모두 설득해야 했다. “밤 촬영인 만큼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곧 계속 찾아가 뵙고, 인사하고, 불편을 끼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정직하게 설명하면서 주민들의 고충을 충실히 듣는 일이었다”라고 김동민 프로듀서는 회고했다. 발목 부상에도 내색 없이 투혼한 정해인 배우, 4회차 분량의 촬영을 3회차 만에 효율적으로 완성한 한준희 감독이 제작팀의 노력에 날개를 달았다.
영성미니아파트의 실내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세트장에서 완성됐다. 배준수 미술감독은 “컬러칩, 창, 창틀, 방범창까지 기존의 영도 영선미니아파트의 것을 현실감 있게 재현하려 했다. 난간까지 실제 사이즈를 실측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호열이 아파트 배관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도 벽 일부를 그대로 재현해 세트에서 촬영됐다.
영옥(원지안)과 준호가 마주한 국밥집은 한준희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터미널 앞 단층짜리 국밥집이던 이곳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면 영화인들의 단골 명소이기도 했다. 배준수 미술감독은 기존의 공간이 가진 “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유명인들의 사인을 살짝 걷어낸 뒤 덧방 작업을 하는 정도로” 자연스러움을 살렸다. 김동민 프로듀서에 따르면 “형광등을 모두 끄고 조명만 달리 주었을 뿐인데도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효과가 나오기도 했다. 국밥집은 현재 문을 닫았으며 <D.P.> 제작진은 이에 입을 모아 아쉬워했다.
호열과 준호가 유흥 주점 등 번화가를 수색하며 탈영병을 찾는 장면은 사하구 하단동에서 찍었다. 하단동 번화가는 “잘 알려진 해운대, 광안리, 서면보다 관광객은 적고 인근 근로자들이 일을 마치면 찾는 동네”(김동민 프로듀서)다. 김 프로듀서는 “오래된 번화가에 상인연합회의 네트워킹이 탄탄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하단동 번화가 골목을 걷는 장면뿐 아니라 호열이 선수모집이라 적힌 전단지를 든 장면도 상인연합회의 협조를 받아 실제로 인근 가게를 섭외해 촬영했다. 이 과정에서 배준수 미술감독은 그동안 영화, 드라마 작업을 통틀어 단연 잊지 못할 해프닝도 겪었다. 전단지의 가안을 디자인할 때 실제 전화번호를 집어넣은 것이 화근이 되어 “시리즈 공개 저녁부터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전화가 쏟아졌”(배준수 미술감독)다. 배준수 미술감독은 이후로도 한참 동안 “‘아직도 사람 뽑냐’라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극 중 배경은 인천이지만 한준희 감독이 주문한 장르성 짙은 공간을 찾기 위해 제작팀은 부산 다대포항을 낙점했다. 김동민 프로듀서는 이곳을 “<D.P.> 시리즈를 통틀어 부산에서 찍은 로케이션 중 가장 장르적인 느낌이 잘 사는 곳”이라 수식했다. 밖에는 배가 정박되어 있고 골목 너머에 선박 관련 공장들이 보이는 풍경이 쇠락한 동시에 이국적이다. 배준수 미술감독은 항구에 배가 정박하는 시기에 맞춰서 “마치 밀입국이 이뤄질 것 같은 조선소에 어울리는 드레싱을 가미”했다. “액션의 동선과 풍성함을 살려줄 컨테이너 작업, 아시바 설치 등도” 미술팀의 몫이었다. 결과적으로 “홍콩영화를 오마주한 듯한 느낌, 무거우면서도 코믹한 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여러 겹의 레이어를 가진 공간”(김동민 프로듀서)으로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