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에서 OTT까지, 부산에서 펼쳐진 드라마시리즈 제작에서도 부산에서의 촬영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중 4편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호천마을의 관광 코스를 소개하는 지도가 세워졌을 정도”로 부산의 정감 넘치는 풍경을 담아낸 <쌈, 마이웨이>부터 한국형 대규모 히어로물, 크리처물의 배경으로 부산을 택한 <무빙>과 <스위트홈>, 그리고 “늘 가던 헌팅지가 아니라 숨겨진 보석 같은”(배준수 미술감독) 촬영지로 부산을 회상한 <D.P.> 시리즈까지 부산의 장대한 드라마는 계속된다.
<스위트홈> 시즌2 디스토피아, 도심, 자연, 모든 게 있는 곳2020년 넷플릭스에서 K크리처 장르의 신기원을 열었던 <스위트홈> 시리즈가 더 확장되고 거대한 규모의 시즌2, 시즌3를 촬영하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시즌1이 주인공 현수(송강)를 비롯한 특정 인물들의 사연이 엮이고 엮인 ‘그린홈’ 아파트, 그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재난 스릴러에 가까웠다면 시즌2, 3는 본격적인 아포칼립스물로서 더 다양하고 넓은 세계관을 표현할 로케이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스위트홈> 시리즈 속 괴물의 정체가 본격적으로 파헤쳐진 ‘밤섬 특수재난기지’의 오픈세트와 황폐한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부산의 공간들이 책임졌다. <스위트홈>의 박은경 기획총괄(스튜디오드래곤)과 강희욱 프로듀서(쇼파트너즈)가 회상한 촬영기를 기반으로 하여 <스위트홈> 시즌2의 부산 제작기를 전한다. 제작부가 전해준 부산 촬영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이어지는 제작기로 정리했다.
카 액션 신의 비밀부산 촬영은 옛 스노우캐슬 도로를 <스위트홈> 시즌2 1부 엔딩 신의 장소로 확정하면서 시작됐다. <스위트홈> 세계관을 양분하는 두 주인공, 현수와 상욱(이진욱)이 탄 차가 전복되는 카 액션 신이면서 두 인물의 감정이 폭발하며 현수가 인간의 편을 택하는 시리즈 전체의 중요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 끝에 스노우캐슬 도로를 선택했고, 밤섬 특수재난기지와 비슷한 부산환경공단 수영사업소 등을 추가로 찾게 되면서 45일에 이르는 부산 장기 촬영이 이어졌다.
벚꽃이 만개한 부산의 봄해당 장면의 촬영을 위해 곡선 형태의 도로와 터널이 이어진 장소가 필요했지만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스노우캐슬 도로는 두 조건을 모두 갖췄을 뿐 아니라 내리막길인 덕에 사고 장면도 더 강렬하게 연출할 수 있었다. 마침 운영을 중단한 상태였고, 기관 담당자의 원활한 협조로 통제에 대한 어려움 없이 촬영을 진행했다. 상욱이 시즌1에서 사망한 유리(고윤정)를 도로 위에서 상상으로 보는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상욱의 내면에 있는 유리의 모습을 가장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벚꽃이 만개한 부산의 봄날에 맞춰 촬영을 진행했다.
디스토피아의 느낌을 구현하다<스위트홈> 시리즈가 택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비주얼을 위해선 대본에 표현된 폐허의 느낌을 로케이션으로 구현하는 일이 중요했다. 부산의 물만골 벙커, 부산환경공단 수영사업소는 기본적으로 아스팔트로 지어졌고 오래된 건물의 느낌이 있어 약간의 드레싱을 더하자 밤섬 특수재난기지의 황폐함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다.
물만골 벙커, 부산환경공단 수영사업소는 파주에 미리 지어놓은 실내 세트의 느낌과 무척 유사했다. 특히 부산환경공단 수영사업소는 단단하고 거친 아스팔트 구조, 높은 계단 등이 <스위트홈> 시즌2, 3의 디스토피아를 표현하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러 괴물이 연달아 나오는 공간이다 보니 공간을 더 검게 톤 다운하는 작업을 거쳤고, 이에 어둡고 으스스한 크리처물의 분위기가 더 잘 연출될 수 있었다.
부산영상위원회와 부산환경공단 수영사업소의 적극적인 협조 덕에 미술·세트 작업도 수월했다. 최대한 로케이션 공간에 피해를 줄이고자 철문을 추가로 자체 제작하여 기존 건물의 아스팔트에 덧대는 식으로 세트를 구현했다. 덕분에 CGI 작업을 최소화했는데도 화면의 톤과 질감이 리 얼하게 표현됐다.
하나의 장면 두개의 연출기장읍에 위치한 더셰프월드센트럴원 건물은 시즌3에서 이경(이시영)이 깨어나는 동물병원 공간의 구현은 물론, 현수와 괴물이 된 이경이 외부 로비에서 벌이는 대규모 액션 신도 충분히 가능한 공간이었다. 이경이 위에서 아래로 크게 뛰어내리는 장면, 현수의 추적 동선 등 배우들의 넓은 동선 설정이 가능했고 와이어 크레인을 세팅하여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원래의 컨셉은 도로까지 이어지는 액션 신이었지만 주변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건물 로비 내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부산영상위원회를 비롯해 기장읍, 인근 경찰서 담당자들이 미리 촬영장을 방문해 촬영 전 시민 안내 및 통제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고 실제 촬영 시에도 지속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부산영상위원회는 그 중간에서 관공서 및 유관 기관과 소통할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을 선제적으로 진행했다.
산과 바다, 도시가 모두 있는 부산서울 및 수도권은 촬영 접근성의 높다라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건물과 상가, 아파트 등이 밀집되어 있어 촬영 시 많은 공력과 시간이 든다. 반면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해 영화·드라마 산업에 대한 관심과 협조가 높아 촬영이 훨씬 수월하다. 또한 부산은 현대적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동시에 바다와 산을 활용한 자연의 분위기도 얻어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부산이 더욱 매력적인 촬영지가 되기 위해선 중장비 대여나 숙박시설과의 협의 등 실질적인 프로덕션 지원뿐만 아니라, 촬영에 필요한 제반 상황과 제작진에 대한 복지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여전히 부산엔 사람들에게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공간이 많으며, 제작진 입장에서도 이처럼 새로운 로케이션 장소를 찾는 일은 색다른 흥미로 다가온다. <스위트홈> 시즌2, 3처럼 부산 한 지역에서 여러 촬영을 효율적으로 마치며, 제작진이 휴차에 부산의 바다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