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에게> 원작자와 각색가로 영화판에 아주 조금 발을 담갔더니 극장 산업의 미래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떻게 하면 극장업이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OTT만 탓하고 있어봐야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극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시 관객을 불러들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폐성 장애 아들의 엄마인 난, 극장업 부흥의 방법 중 하나로 ‘발달장애인 전용 회차’가 개설되기를 바란다. 기존 관객 모객에 어려움이 있다면 새로운 관객층을 개척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동안 장애로 인해 높은 극장 문턱에 가로막혔던 관객을 위해 문을 활짝 열면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극장의 결단뿐이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극장에 간 것은 2019년이었다. 모닝빵 5개와 계란과자 2개를 준비해갔음에도 중간중간 아들이 내는 ‘남다른 소리’를 막지 못했다. <겨울왕국2>를 함께 관람하던 몇몇 어린이와 보호자에게 눈칫밥을 먹고 난 뒤 더는 아들과 극장에 가지 않았다. 장애인이라고 해도 장애 유형에 따라 극장 이용에 필요한 지원 요소가 다르다. 신체장애의 경우엔 환경적 지원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만 발달장애와 같은 정신장애의 경우엔 관객들간 ‘영화를 관람할 권리’가 상충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로 다가온다. 아들이 어릴 때는 재활치료만이 아들의 삶을 구원할 줄 알았다. 치료실을 열심히 다니며 노력하면 아들의 장애가 어느 정도 희석되거나 고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됐다. 발달장애는 노력해서 낫게 하거나 없앨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구나. 발달장애는 그냥 아들의 정체성 중 일부이며 나와는 또 다른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자 아들의 삶에서 중요한 게 달라졌다. 이제 아들에게 중요한 건 일상을 잘 살아내는 능력이다. 미용실에 가서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자르는 능력, 지하철에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능력, 음식점에서 밥을 더 먹고 싶을 때 옆 테이블 사람의 밥공기에 손을 뻗지 않는 능력, 이런 것들이 아들의 삶에 중요하다.
일상을 살아내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돌아다녔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중증 발달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전국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없는 청소년으로 자랐다. 그런데 이렇게 전국 곳곳의 모든 곳을 다 갈 수 있는 아들이지만 여전히 못 가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 바로 극장이다. 나에겐 너무 낮은 문턱이라 고민할 필요조차도 없는 공간이 아들에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이 세상 최고의 좁은 문, 높은 벽인 것이다. 내가 올해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학부모회장을 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극장에 연락을 돌린 것이었다. 롯데시네마와 CGV에 전화해 특수학교 학생들이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발달장애 전용 회차를 개설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물론 몇백만원의 대여료를 내면 언제든 단체관람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극장에 갈 때 관 대여료를 따로 내지 않는데 왜 우리만 대여료까지 내면서 영화를 봐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여료 없이 입장료만 내길 원했다. 그러자 CGV는 대여료 없이, 장애 할인 가격의 입장료만 받는 것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드디어 평일 저녁의 어느 날, 특수학교 재학생과 가족들이 극장에 모였다. 영화가 시작됐는데 바로 앞에 앉은 어린이가 아예 뒤를 향하고 앉아 나를 쳐다보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과자 먹어요?” “무슨 과자예요?” “맛있어요?” 나는 웃으며 옆에 앉은 아들에게 물었다. “동환아, 우리 동생한테 과자 하나 줄까?” 아들은 과자를 달라는 말에 마음이 급해진 듯 갑자기 속도를 내며 한번에 과자를 두세개씩 입에 넣기 시작했다. “아이고, 알았다. 이놈아. 네 거 안 뺏어 먹을게. 천천히 먹어.” 몇칸쯤 떨어진 옆 좌석에선 누군가가 “마마마마마마마마마”라며 반복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기 뒤 어딘가에선 또 누군가가 “우히히”라며 즐거움에 흠뻑 빠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작은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건 기본이었지만 관객들은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그때 어딘가에서 이제 막 변성기에 접어든 누군가가 극장 전체를 향해 소리쳤다. “아이 참, 시끄럽네. 조용히 해!” 그 말에 극장에 있던 모든 어른이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던 한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답답한가봐. 잠시 나갔다 올게.” “네. 다녀오세요.” 관객들은 수시로 상영관을 드나들었고 객석 곳곳에선 끊임없이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고, 자녀의 입을 틀어막지도 않고, 자녀는 입이 틀어막히지도 않고, 아무도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 영화에 집중해 94분의 러닝타임을 즐겼다. 영화가 끝나고 얘길 들어보니 생애 처음 극장에 와봤다는 사례가 많았다. 우리(발달장애인의 부모)는 그동안 타인의 영화 볼 권리를 존중하느라 정작 내 자녀의 영화 볼 권리는 박탈하고 살았던 거다. 비장애 중심의 극장 시스템에 수긍하고 단념하며 사느라 ‘극장에 다니는 일상’을 배우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던 거다. 몇년 전 유니버설 발레단이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는데 본공연에 앞서 펼친 자선공연에 당첨돼 보러 간 적 있었다. 자선공연은 장애인을 위한 공연이었는데 그때 ‘아하, 바로 이거다’라며 박수를 쳤다. 극장에서도 발달장애 전용 회차가 개설돼야 한다. 공짜로 보겠다는 게 아니다. 모든 영화마다 전부 다 전용 회차를 열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월별로 한번, 계절별로 한번이라도 좋다. 발달장애인이 편하게 와서 관람할 수 있는 전용 회차가 개설돼야 한다. 그러면 전용 회차 덕에 수많은 발달장애인은 극장에 가는 경험을 열번, 스무번 반복해서 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극장에서 올바르게 관람하는 예절을 배우게 될 것이다. 발달장애 전용 회차를 개설한 극장 덕분에 발달장애인이 일상을 잘 살아내는 데 필요한 ‘극장에 가는 능력’ 하나를 더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발달장애 전용 회차를 통해 ‘극장 예절’을 습득한 누군가는 하나씩 그곳을 졸업하면 된다. 굳이 발달장애 전용 회차가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 남들과 같은 영화를 보며 극장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그냥 사람’으로 살아가면 된다. 요즘 평일 낮에 극장에 가면 공포영화 주인공이 될까봐 무서움이 느껴질 정도다. 텅 비어 썰렁한 것이 살인마가 전기톱을 들고 나타나도 아무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다. 새로운 관객층을 뚫어야 한다. 기존엔 문턱이 높아 극장에 발을 들일 수 없었던 이들, 이들을 위해 문턱을 낮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발달장애 전용 회차는 분명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