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주원 / 사진제공=고스트 스튜디오"당장 몇 시간 전에 내 옆에 있었던 사람, 내 동료가 지금 하늘나라로 갔는데,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채 몇 시간 뒤 출동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마음이 타들어갈 것 같아요. 소방관들 중에 실제로 이런 일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주원은 영화 '소방관'을 진심과 진지함으로 대했다. 배우로서는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현장에 즐거웠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소방관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계신지, 어떤 환경 속에서 일하시는지 찾아보고 마음가짐이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소방관'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목표를 가지고 투입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주원은 서부소방서 신입 소방관 철웅 역을 맡았다. '소방관'은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됐다. 서울 홍제동 다세대주택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하면서 소방관들이 화재, 건물 붕괴 과정에서 여럿 순직하고 부상을 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가 알려지고 일부 개선됐다.
'소방관'은 주원에겐 극장 개봉 영화로는 '그놈이다'(2015) 이후 처음이다. '소방관'은 이미 2020년 촬영이 완료, 개봉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주원은 "어떤 작품보다 많이 기다렸다. 코로나도 있었고 이슈가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제가 감독님께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대본을 봤을 때부터 남다르게 다가왔던 작품이다"며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사회 날 주원을 비롯해 출연 배우들은 영화 감상 후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감독님 말씀처럼 기교 없이 깔끔한 영화가 나왔어요. 오히려 우리 영화에 기교가 있었다면 더 이상했을 것 같아요. 그때 당시의 소방관 분들의 마음과 지금 소방관 분들의 진심이 전달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배우들끼리고 '우리 영화 참 좋다', '따뜻하고 느끼는 바도 있다'고 이야기했죠. 혹시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좋은 영화를 찍었으니 좋게 생각하자'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사진제공=바이포엠스튜디오극 중 화재 현장 장면을 통해 소방관들이 실제로 화재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뜨거운 화염에 시커먼 연기가 가득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소방관들은 뜨거운 바닥과 벽을 짚어가며 구조자를 찾는다. 주원은 "긴장감 속에 촬영하니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좀 버거웠다"고 했다.
"완성된 영화 속 장면의 불이 100%라고 한다면, 실제 촬영장에서 85% 이상 불을 질러놓고 시작했어요. CG는 일부 들어갔어요. 처음 화재 현장에 들어갈 때 '이거 괜찮나' 생각이 앞서더군요. 덜 뜨겁게 하는 무언가를 몸에 발라주셨는데, 그럼에도 너무 뜨거웠어요. 눈앞에서 큰불을 보니 멍해졌죠. 금방이라도 나를 덮칠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런 환경 덕에 신입 소방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왔죠. 우리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데, 리얼하지 않은 불을 사용하는 건 앞뒤가 안 맞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때 당시 소방관 분들이 사용했던 장비도 동일하게 착용했는데, 20kg 이상의 장비를 메고 촬영하다 보니 몸은 둔하기 그지 없었죠. 라이트가 켜져있는데도 한치 앞도 안 보여서 벽과 바닥을 짚으면서 갔어요. 자문해주는 소방관 분이 실제로도 벽과 바닥을 짚으며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을 기억하며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촬영했어요."
주원 / 사진제공=고스트 스튜디오'소방관'의 또 다른 주인공 곽도원은 2022년 음주운전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후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구조반장 역인 곽도원은 이번 영화의 주축. 곽도원의 분량을 덜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원은 곽도원의 근황을 전했다.
"도원 형한테 연락은 했어요. 홍보 활동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영화에 도원 형의 분량이 크지만 형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소방관 분들의 이야기죠. 제가 그 몫까지 열심히 홍보하고 있겠다고 했어요. 형은 너무 미안해하고 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많이 반성하고 있고 진심으로 미안해 하더라고요. 어쨌든 형이 없으니 형 몫까지 이 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얘기했어요."
주원 / 사진제공=고스트 스튜디오주원은 최근 'SNL 코리아 시즌6'에 출연해 익살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는 돌아다니면 '작품 잘 봤다'는 얘길 하는데, 요즘은 'SNL 잘 봤다'고 하는 분들이 생겼다"며 웃었다.
"제가 성격상 무언가를 할 때 마음속으로 턱턱 막는 게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그러지 말자' 했고 이제는 많이 변했죠. 대중은 많은 모습들을 원하고 소통하길 좋아해요. 저 또한 '내가 연기를 시작할 때 일부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닌데' 싶었죠.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로 했죠. 'SNL'에 출연하기도 했을 때는 거기 연출부와 회의하며 '더 할 수 있다', '더 망가질 수 있다', '더 아이디어를 달라' 그랬죠.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변화된 모습에 대한 좋은 반응을 들었을 때 "뿌듯하다"는 주원. 그는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데, 내가 스스로 막은 것 같다. 내가 왜 이걸 막고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저는 변화를 추구하는 스타일이지만 항상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맡는 캐릭터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늘 변화에 목말라있던 사람 중 하나였어요. 다른 캐릭터를 맡아보기도 하고 남들이 힘들어하는 것들을 일부러 해보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대중이 원하는 모습이든 아니든 그게 우리의 일이니까요. 소방관 분들이 화재 현장에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에겐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품이 잘 되면 더욱더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