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영화] <행복의 나라>▲ 영화 <행복의 나라> 공식 포스터.ⓒ NEW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의 흐름을 이 영화가 이을까. 공교롭게도 12.12 군사반란의 기폭제가 된 10.26 사건을 다루는 영화가 곧 관객과 만난다. 6일 서울 용산 CGV에서 공개된 <행복의 나라>는 역사적 사실에 꽤 기발한 상상력을 보탠 대중영화였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도 알려진 10.26 사건은 이미 <남산의 부장들>을 비롯, 몇몇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구성됐거나 재해석 된 바 있다. 그만큼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비롯해 그의 비서 박흥주 대령, 동석했던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등 고위 요직자들에 대한 여러 일화들이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영화는 이중 박흥주 대령에 주목한다. 극중 박태주(이선균) 대령으로 등장하는 이 인물은 청렴한 군인으로 묘사된다. 문제는 대통령 암살 사건에 가담했다는 내란죄를 묻는 재판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사형이 속행됐다는 사실이다. 당시가 계엄령 상황이자 군인이라는 이유로 박 대령은 항소권이 없었고, 김재규 등 다른 피의자들이 재판 중인 과정에 총살당한다.
역사적 사건을 다룸과 동시에 <행복의 나라>는 박태주 대령을 변호하게 된 정인후(조정석) 변호사를 등장시킴으로써 법정극이라는 서브 텍스트를 취한다. 인권 변호사 및 운동권 출신으로 구성단 변호인단과 달리 정인후는 속칭 위증도 일삼게 하는 세속적 변호사로 초반에 묘사되는데 박태주을 변호하면서 내면에 자리하던 상식과 정의감에 눈뜨게 된다.
영화 <행복의 나라>가 특별한 이유 ▲ 영화 <행복의 나라>의 한 장면.ⓒ NEW
▲ 영화 <행복의 나라>의 한 장면.ⓒ NEW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건이기에 영화는 무리해서 해당 사건의 전말을 뒤집지 않는다. 치열하게 피의자들의 감경을 주장하고, 법정에서 수 싸움을 하는 변호사들의 긴장감과 긴박감은 살리면서 가족과 얽힌 각 캐릭터들의 개인사를 엮어 신파 요소도 담보한다.
여기까진 역사를 소재로 한 여느 대중영화와 큰 차별점이 없어 보인다. 약 100억 원대 예산을 들인 나름 대작답게 풍부한 로케이션과 세트의 활용도 돋보이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저마다 개성을 부여받아 활기차게 움직인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행복의 나라>가 특별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영화적 상상력에 있다. 밀실 재판을 이끌고 이후 12.12 쿠데타의 주역이 되는 전상두(유재명)와 정인후 변호사가 마주하는 장면에서 정인후가 전상두에게 날리는 대사들이 통쾌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다 아는 전두환을 상징하는 전상두를 향해 정인후는 "왕이 되고 싶어? 그럼 왕을 해! 돈을 갖고 싶어? 대한민국 돈 가져!"라면서 "그러니까 절대 사람은 죽이지 마"라고 일갈한다.
이는 이미 우리가 겪어온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학살, 고문과 불법 감시로 얼룩진 공안 정국에 대한 일갈이기도 하다. 대통령 퇴임 후 내란죄, 반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된 뒤 전두환은 단 한번도 본인이 자행한 국민 살인을 비롯한 범죄 행위를 인정한 적이 없다. 결국 출소 후 천수를 누리고 사망한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감독이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한 셈이다.
<왕의 남자> 이후 역사의 시계를 현대로 돌린 추창민 감독은 묵직하면서도 때론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와 인물들을 세공해 놓았다. 완성된 지 2년 만에 개봉하는지라 극장가에도 활력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봄 직하다.
한줄평 : 모두가 그에게 하고 싶었던 그 말, 슬프면서도 통쾌하다평점 : ★★★★(4/5)영화 <행복의 나라> 관련 정보
감독 및 각색 : 추창민각본 : 허준석출연 : 조정석, 이선균, 유재명 외제공 및 배급 : NEW제작 : 파파스필름, 오스카10스튜디오공동제작 : 초이스컷픽쳐스관람등급 : 12세이상관람가러닝타임 : 124분개봉 : 2024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