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전, 란’ 장면 하나.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가 ‘영화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개막작으로 걸리는 건 처음이다.
장면 둘.
닷새 간의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된 눈에 띄는 한국 영화는 ‘베테랑2’(감독 류승완)뿐이다. 이제 명절 연휴를 ‘극장가 성수기’라 분류하기 어렵다는 신호다.
충무로의 위기는 팬데믹을 거치며 본격화됐다. 지난 2019년 연간 누적 관객 2억 명을 돌파하며 정점을 찍은 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충무로의 봄’은 요원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상황은 충무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전, 란’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인 박찬욱 감독이 제작 및 각본을 맡고, ‘심야의 FM’으로 잘 알려진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충무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배우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등이 참여하는 작품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극장 상영’이 전제되지 않는다. OTT 공개를 목적으로 만든 작품을 ‘영화’라 볼 수 있을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2017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를 둘러싸고 유럽 영화계에서 불거졌던 논란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OTT 콘텐츠를 영화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라는 의견에 점차 무게가 실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21년부터 OTT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온 스크린’ 섹션을 운영하면서 매년 편수를 늘리고 있다. 넷플릭스는 영화제 기간 영화의전당 맞은 편에 그들만을 위한 공간과 더불어 프레스룸까지 운영하며 영화계, 언론계와 접점을 넓히고 있다.
해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넷플릭스 ‘로마’가 2018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고, 애플TV플러스의 ‘코다’는 2022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이미 세계 유수의 영화제나 시상식에서도 OTT 콘텐츠를 영화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전, 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을 두고 박도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넷플릭스 작품이기 때문에 개막작에서 제외할까 고민한 적은 없다"면서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에도 OTT 작품을 적극적으로 영화제에서 활용하고 소개하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베테랑2 명절 극장가의 기상도도 그리 맑지 않다. ‘베테랑2’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대작이 없다. 지난해 추석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 ‘1947 보스턴’ ‘거미집’ 등이 추석 연휴 나란히 개봉돼 경쟁했던 것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 영화는 각각 191만 명, 102만 명, 31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도합 324만 명 수준이다. 극장 관객수가 급감하면서 개봉 영화 편수가 많아져도 ‘파이 쪼개기’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전편이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베테랑2’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 속에서 불필요한 출혈 경쟁을 피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베테랑2’의 흥행 추이를 충무로 전체가 지켜보고 있다. 앞서 ‘범죄도시4’, ‘파묘’가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였던 것처럼 대중은 철저하게 ‘극장에서 볼 영화’와 ‘아닌 영화’를 구분하는 관람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베테랑2’가 지난해 개봉한 추석 영화들의 흥행 수치를 넘어선다면 충무로 양극화 현상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충무로에서는 "내년이 더 문제"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팬데믹 기간 개봉을 밀어뒀던 ‘창고 영화’들로 근근이 버텨왔으나, 내년부터는 개봉 영화 편수가 더 줄어든다. 투자가 급감하면서 제작 시도 자체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내 1위 투자배급사인 CJ ENM조차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외에는 투자를 확정한 작품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의 OTT 콘텐츠 편중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또한 명절이나 여름 휴가철 역시 더 이상 ‘극장 성수기’로 보기 어렵다. 경쟁력 있는 영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개봉돼 시너지 효과를 내는 시장 상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 중견 영화제작사 대표는 "신작을 기획해도 투자받기 어렵고 개봉해도 흥행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받는 OTT 납품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하지만 OTT에 기대려는 제작사와 많아지며 각 플랫폼이 제시하는 제작 조건도 예전보다 나빠졌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