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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한복판에서 20일..."기레기" 비난이 쏟아졌다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1-04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마리우폴에서의 20일>영화를 보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전부터 이미 크름반도 강제합병 이후 2008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돈바스' 일대에서 전쟁은 일상이 되었다. 유럽의 동쪽 경계인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는 세계의 주목을 유독 더 받았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마치 리얼리티 TV를 보듯 체험하게 만드는 작품 속 무빙-이미지는 보는 이를 전율시켰다.

미국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방 하나 가득 채울 만큼 수상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영화를 목격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체험한 20일의 기록

▲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마리우폴은 유서 깊은 전략 요충지다.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거대한 '동부전선', 독일과 소련의 전쟁에서 이 지명은 끊임없이 발견된다. 그만큼 반드시 차지해야 할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닌 곳이란 의미이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 즉시 마리우폴은 최전선이 되었다. 러시아 점령지역 사이에 자리하고, 흑해를 통제하기 위해 핵심 교통로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세계의 관심이 마리우폴 포위전에 쏠렸지만, 위험이 너무 크다 보니 외신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 남은 곳이 있긴 했다. AP통신 우크라이나 현지 인력 취재팀이다. 이들은 떠날 수 없었다. 바로 자신들 나라 이야기이고,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쟁상황에서 세계 여론을 움직일 '마지막 '동아줄'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이들이 마리우폴에 남은 유일한 미디어가 된다.

시가전 중반까지 20일 동안 취재팀은 격전 한복판을 전전한다. 러시아군은 압도적 전력으로 도시로 밀고 들어온다. 매일 전선이 이동하며 적군은 중심부로 진입 중이다. 이쯤 되면 주인공들이 절망적인 상황에도 영웅적으로 맞서는 우크라이나군의 애국심과 용전분투, 그리고 러시아의 최첨단 무기들을 조명하리라 기대하는 이들이 수두룩할 테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전장의 용맹을 보여주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너무 위험한 것도 문제일 테지만, 그들의 카메라가 조명하고자 한 건 전쟁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비극성'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마리우폴로 달려간 취재팀이 맞닥뜨린 건 우리가 할리우드 전쟁 블록버스터에서 보던 장대함이 아닌, 현세에 강림한 지옥과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인간 군상의 거대한 아수라장 연속에 불과했던 것이다.

극적 구성이나 서사를 운운하는 건 <마리우폴에서의 20일>에선 배부른 투정과 사치에 불과했다. 취재팀은 자신들의 안전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 매일 그들은 장소를 옮겨가며 다양한 전장의 참상을 기록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에 겹다. 물론 이들은 유일한 외신 취재팀으로 날로 악화하는 전쟁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 당국의 각별한 보호를 받았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지원과 현지의 조력에도 불구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은 하루하루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이제는 과연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카메라에 담긴 전쟁의 참상, 그리고 오래된 취재윤리 갈등의 최전선

▲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계속 촬영해야 할지, 멈추고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마리우폴에서의 첫째 날, 취재팀은 막 시작된 폭격으로 집이 무너지며 간신히 탈출한 이들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필사적으로 생지옥을 벗어나려는 이들은 취재팀에게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애써 침착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자신들이 겪는 비극을 온 세계에 알려달라 간절히 호소하는 이도 있지만, 집이 무너지고 가족이 실종되는 참극 앞에서 정신 줄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기레기'란 멸칭과 분노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자신들의 참상을 특종으로 만들려는 미디어의 속성에 대한 공분의 발로다.

하지만 취재팀은 절대로 카메라를 돌리지 않는다. 욕을 먹고 적대적 시선에 둘러싸이지만, 그들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순간마다 윤리적 고뇌는 놓지 않는다. 마리우폴 주민 중 일부는 전쟁상황에서 국제적 관심이나 지원에 도움이 될 취재에 협조하며 도움을 당부한다. 이 찰나에 취재팀은 본인들이 겪고 있는 위험과 수난을 눈 녹듯 잊었을 테다. 그러나 그 순간 외에는 내내 실질적인 힘이 될지, 그저 특종으로만 남을지 자신할 수 없다. 그만큼 그들이 목격한 상황은 거대한 절망의 무저갱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안전을 위해, 그리고 부수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극대화할 소재 발굴 차원에서 병원에 머문다. 끊임없이 마리우폴 포위전의 '부수적 피해'가 병원으로 몰려든다. 축구를 하다 다리가 날아간 소년은 평생 다시는 축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절단된 다리가 화면에 잡힌다. 만삭의 임산부가 피투성이가 된 채 골반이 으스러진 상태로 긴급 후송된다. 취재팀은 며칠 후 그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애쓴다.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뱃속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직후에 산모도 죽었다고 한다. 아이의 시신을 얼싸안은 아버지가 흐느낀다. 의사가 제발 세계에 알려달라며 안내한 병원 지하실에는 시신이 첩첩이 쌓여 있다.

러시아군의 탱크가 점점 병원 인근으로 모여든다. 카메라를 들고 목 좋은 건물 옥상을 활보하다 적군 저격수의 표적이 되는 건 한순간의 일이다. 아파트가 포격에 무너지고, 그 와륵에 깔린 사상자를 구호하던 소방관과 구조팀도 연이은 공습에 사라져 간다. 사방에 유혈과 시체가 가득하다. 어느 순간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 채 곁눈질을 할 수밖에 없다. 차마 그 비참한 광경을 두 눈으로 직면하기 두렵기 때문이다.

21세기 하이브리드 정보전쟁이라는 어떤 역설과 모순

▲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는 AP통신 취재팀이 현장에서 촬영한 기록영상과 사진이 위성 전화로 편집팀에 전송되어 보도되는 상황을 수시로 교차한다. 그 과정에서 취재팀의 생짜 촬영과 뉴스로 나가는 촬영본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피와 시체를 흐릿하게 처리하는 게 기본이지만, 때로는 편집팀의 의도대로 더 비참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대조를 통해 관객은 현대 미디어의 속성과 본질에 관해 고찰하게 된다.

유일한 프로페셔널 취재팀이 위험을 감수하며 촬영한 마리우폴 시가전 기록은 전 세계에 송출된다. 능란한 편집과 연출로 영화는 그들의 노고가 온 세계 주요국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풍경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런 위업에도 불구하고 정작 취재기자의 목소리는 생기를 잃어가고, 자신들이 수행하는 과업이 무슨 소용이 있나 회의로 가득하다. 미디어는 전쟁의 비참함을 송출하지만, 그들이 기대한 국제적 반향과 전쟁 종식의 결과로는 이어지지 못한다. 카메라는 폭탄을 막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21세기 전쟁의 새로운 특징인 '미디어 전쟁', '하이브리드 전쟁'의 실체가 확인되기 시작한다. 러시아 정부와 군은 AP통신이 서방세계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따르며 전쟁의 참상을 왜곡한다고 비난한다. 러시아 매체는 AP통신이 세계에 보급한 영상이 배우와 세트를 이용한 조작과 연출이라 주장하며 역정보를 퍼뜨린다.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이지 분간하기 어렵게 하기 위함이다. 유언비어가 횡행하고, 러시아의 주장은 여러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간다. 이를 일일이 대차대조하는 진실 공방은 급박한 상황과 쏟아지는 정보 폭주 속에서 무의미해진다. 정확히 그런 효과를 기대하고 의도한 바대로다. 러시아군 탱크에 표기된 'Z' 문양은 인기 좀비물 [월드워Z]의 패러디다. 현실과 픽션이 뒤엉켜 괴물이 되어간다.

물론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제작진은 러시아를 침략자, 우크라이나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각자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영화에 대한 선입견은 나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지하며 그들의 보호를 받는 와중에도 취재팀은 프로파간다로 뻔히 보일 태도를 경계하고, 오직 전쟁의 비극을 최전선에서 잡아내는 데에만 집중한다. 그런 선택이 그들과 영화 모두를 구원하는 셈이다.

작금 한국사회에 전하는 경고

▲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이 영화를 소개하는데 구구절절한 분석과 상찬은 별로 쓸모가 없을 일이다. 그저 전쟁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생한 증언을 체험하게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타인의 비극조차 주식 투자와 수출 호재로만 다루는 국내 미디어와 그에 길들어가는 세태에서 이 영화가 제 몫을 다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방위산업을 현재 한국 정부와 기업은 신성장동력이라며, 앞으로 더욱 격화될 신냉전 시대에 유망산업으로 꼽고 적극적으로 수출 판로를 개척하는 중이다. 점점 더 방위산업 전시회가 공들여 기획되고, 세계 몇 번째 무기 수출 순위로 올라갔다며 열띤 보도가 나온다. 구역질이 올라올 노릇이다. 타인의 불행은 나의 기회라지만 최소한의 성찰도 연민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기쁘고 좋아할 일인가.

시리아에서 우크라이나, 그리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진 21세기 전쟁의 풍경은 국경을 초월해 끔찍할 정도로 닮은꼴이다. 그 개별의 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속 이미지는 눈썰미가 여간 뛰어나지 않고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그만큼 구구절절한 정치적 상황 다 떼어놓고 평범한 이들에게 전쟁이란 그런 슬픔과 유혈, 비참함만 남는다는 의미이다.

'치킨 호크'란 속어가 있다. 전쟁을 예찬하며 굴욕적인 평화보다는 민족과 국민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때로는 필요하다는 궤변론자들, 하지만 정작 전쟁이 터지면 자기 보신에 혈안이 되는 기득권층과 그 나팔수들을 뜻하는 표현이다. 끝내 러시아에 함락당해 점령지가 된 마리우폴의 비극을 기억하며,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에서 김유신과 계백이 유일하게 동의했던 진실, '전쟁은 미친 짓이다'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남의 전쟁에서 특수를 기대하는 달콤한 환상 틈에 어느새 전쟁의 위협은 이미 우리들 현관앞에 와 있다. 작금의 현실에서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영화로만 볼 수 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작품정보>

마리우폴에서의 20일
20 Days in Mariupol
2023 우크라이나 전쟁, 다큐멘터리
2024.11.06. 개봉 94분 13초 15세 관람가
감독/각본/촬영/내레이션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수입/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2024 96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장편다큐멘터리상
2023 퓰리처상 공공보도상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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