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 387] 영화 <룩백>▲ 애니메이션 영화 <룩백> 스틸컷ⓒ 메가박스중앙(주)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01.
감정은 하나의 시점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의 공간에서 발현하여 지금 이 시간 속에서 유영하듯 떠다니는 감정은 단순히 그렇게 머물다 휘발하지 않고 추억이나 기억 속에서 또 한 번 존재한다. 어떤 의지로 저장되거나 간직되는 것은 아니다. 외딴섬의 로빈슨 크루소가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듯이, 우리 또한 한참 동안 잊고 있던 감정을 그렇게 마주하게 된다. 정확한 것 하나는 더 이상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더 많은 세상을 경험했고, 달라져버린 주변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훨씬 다양한 변주와 다양한 순도를 가진 또 다른 감정을 체험했다. 이것을 성장이라는 단어로 대강 뭉쳐 싸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뭉뚱그리고 나면 더 이상 함께 나아갈 수 없는 지난 기억과 여전히 그대로인 그때의 감정이 영원히 모습을 감춰버릴 것만 같아서다. 영화 <룩백>의 첫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이 작품은 일본의 유명 만화가인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단편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현재 소년 점프 에서 <체인소 맨>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는 지난 2021년 만화가를 꿈꾸는 주인공 후지노와 친구 쿄모토의 이야기로 <룩백>을 공개했고, 당일에만 300만 회가 넘는 뷰(veiw, 인터넷상에서 사용자가 홈페이지를 열어본 횟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애니메이션화는 '스튜디오 두리안'을 설립하며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이 맡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요청으로 함께 작업했던 이력이 있을 정도로 업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원작자인 후지모토 작가가 작품을 대하는 방식이 자신과 비슷하여 이야기에 깊이 감정이입하며 솔직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며 이번 작업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02.
영화화된 애니메이션은 원작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만화 <룩백>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두 소녀가 만화를 통해 교류하며 나아가는 시간을 그려내고 있다. 그림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한 후지노와 세상과 단절된 채로 방 안에만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전부였던 쿄모토가 중심이 된다. 두 작품 사이에 이야기의 흐름이 변한다거나 새로운 각색이 더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차이가 있다면 정적인 이미지가 동적인 이미지로 환원되면서 조금 더 직관적이고 적확한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부분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양쪽 모두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후지노와 쿄모토 두 사람의 관계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굳이 나누자면 세 차례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내내, 관계성으로부터 시작되는 두 인물의 감정이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보다 전면에 내세워지는 것은 후지노의 감정이다. 어떤 시점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녀의 내면은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쿄모토는 그런 변화를 촉발하는 요인이자 그 변화를 봉합하는 대상으로 활용된다. 극의 불안과 균열을 이끌어내는 쪽이 후지노, 화해와 안정을 완성하는 쪽은 쿄모토가 되는 것이다.
불안과 균열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후지노라는 인물이 악인으로 그려진다거나, 화해와 안정에 놓인 쿄모토가 선을 구현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시각은 위험하다. 작품 속 두 소녀는 선악의 문제가 아닌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 재능의 발현을 인식하고 있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 자의식의 강약 등의 여러 지점에서 서로 반대쪽에 서 있을 뿐이다. 앞서 이 이야기에 '성장'이라는 단어 하나를 놓음으로써 단순화시키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두 인물의 동력에 해당하는 감정과 획득되는 장면의 결과적 환기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단어일 뿐이다.
▲ 애니메이션 영화 <룩백> 스틸컷ⓒ 메가박스중앙(주)
03.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만남'(서로를 모르던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하기까지)과 '균열'(함께 그림을 그리며 나아가던 두 사람이 쿄모토의 꿈으로 인해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기까지), '별리'(어떤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게 되기까지)의 주제로 삼등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 지점이 다루는 주요 서사나 감정은 분명 모두 다르지만, 두 인물이 반응하는 방식은 거의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혼자일 때는 일렁이지 않던 내면이 서로의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 또렷해지기도 하고 모습을 바꾸기도 하며 수면 위로 드러나는 식이다. 키요타카 감독이 두 사람의 세계가 공명하기 전, 각자가 안고 있던 내면의 심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반드시 배치하고 들여다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완성되는 과정은 그 뼈대와도 같다.
학보의 4컷 만화를 담당하며 나름대로 실력이 있다고 생각해 왔던 후지노는 처음 쿄모토의 그림을 마주하고 자신의 그림이 평범해 보이는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이후 쿄모토에게 빼앗긴 무언가를 다시 되찾기라도 하겠다는 듯 쉬지 않고 연습에 몰두하지만, 여전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실력 차이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그만두겠다는 선택마저 하게 된다. 쿄모토의 것이 자신의 노력으로는 채울 수 없는 재능이라고 여기게 되면서다. 일종의 질투와 욕심. 물론 이 감정은 쿄모토가 일으킨 것이 아닌 후지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쿄모토의 집으로 처음 찾아갔던 날, 그녀는 쿄모토의 방 앞에서 자신의 노력과도 같은 연습장의 몇 배에 달하는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쿄모토는 후지노의 이런 감정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한다. 그것과 무관하게 그녀는 그녀대로 그림을 그려왔을 뿐이고, 오히려 후지노가 학보에 게재한 4컷 만화의 열렬한 팬임을 고백한다. '그리는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 이 마음은 후지노로 하여금 자신이 그림을 그만둔 일이 공모전에 낼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라는 거짓말까지 이끌어내도록 만들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공책을 꺼내 들게 만든다. 때때로 타인의 열정이 자신의 안에 꺼지지 않은 불씨에 풀무질을 해내기도 하는 법이다. 이 장면 이후로 나오는 모든 내러티브의 구조가 그렇다. 어린 시절의 어긋난 마음이 티 없이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만나 나아가게 되는. 한 사람은 마음의 등에 기대고, 또 한 사람은 현실의 등에 기대며 서로의 등을 마주하게 되는.
▲ 애니메이션 영화 <룩백> 스틸컷ⓒ 메가박스중앙(주)
04.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고 싶어. 너에게 의지하지 않고."
관계에 형성의 시점이 존재한다면, 해체의 순간도 분명히 실재한다. 이 작품에서 만남의 장면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다. 만남 이후 7편의 단편을 함께 완성한 뒤 연재 제안을 받게 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쿄모토가 만화가 아닌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는 장면이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 이후 하강하던 극의 리듬이 급격히 다시 높아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분명 균열과 해체의 의지는 후지노가 아닌 쿄모토로부터 시작되지만 두 사람이 발현하는 감정의 결은 영화 전체에 놓여있는 두 사람의 성격과 다르지 않다.
사실 이 장면은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던 쿄모토가 자주적인 태도를 보이며 스스로 나아가려는 성장의 모티브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법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장면으로 인해 후지노의 내면이 조금 더 강화되는 부분도 있다. 혼자서도 큰 문제가 없는 쿄모토와 달리, 후지노는 그녀와 분리되어 있는 장면에서 부정적인 감정에 크게 휩싸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인다. 쿄모토를 만나기 전인 영화의 첫 지점과 쿄모토를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마지막 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감정은 앞서 설명했던 쿄모토로부터 획득되는 것임이 분명해진다.
이 관계성을 달리 해석하자면, 상대에 대해 갖게 되는 감정의 시작점이 이들의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에도 특정한 순간마다 트리거처럼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후지노를 처음부터 동경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쿄모토가 그의 등을 기대며 나아가는 동안 온기를 경험하는 것. 반대로 쿄모토로부터 알 수 없는 질투와 경쟁심을 느끼던 후지노가 쿄모토의 부재 이후에야 그의 진심과 응원을 발견하게 되는 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글의 처음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내내 느끼고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애니메이션 영화 <룩백> 스틸컷ⓒ 메가박스중앙(주)
05.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두 사람의 내면과 상호적인 관계성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림 연습에 몰두하는 후지노의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뒷모습이 담긴 컷으로만 하나의 신을 완성해 내는 부분이나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자신의 어리석은 순간들을 만회하고자 하는 후지노의 회한이 담긴 신 같은 장면들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쿄모토를 처음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후지노의 상기된 모습은 원작 만화에서 마주하게 되는 컷 단위의 표현과 달리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진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감정을 선사하는 부분이 있으니, 두 작품 사이를 오가며 경험적 차이를 헤아려 보는 것도 이 작품을 관람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우리가 그동안 흔히 접해왔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나 디즈니 픽사의 영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결이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 <룩백>에는 어느 시절 우리가 지나온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압축되어 있다. 물리적으로 타인을 다치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관계를 망가뜨리기에는 충분한 정도의 어린 시절의 질투나 욕심. 그리고 그때는 알지 못했을 쌓여가는 관계와 시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 같은 것들. 이렇게 영화 곳곳에 남겨져 있는 정서는 다양한 형태로 모두의 마음을 다독일 것이다.